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피드백 없이 결과만 통보받는 일이 허다하다. 떨어진 이유를 물어봐도 묵묵부답.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야 고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떨어질 때마다 담당자로부터 매번 신랄한 비판을 받을 수 있었다. 하나씩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해주니 사업계획서가 더 단단해지는 건 당연지사. 그렇게 받은 피드백을 정리하니 나름의 ‘오답노트’가 완성되었다. 역시 실질적인 도움은 성공 스토리보다 실패 스토리로부터 시작된다.
귀하디 귀한, 심사위원의 피드백 5가지.
세세한 내용부터 허점을 찌르는 내용까지. 정말 많은 피드백을 받았지만 추리고 추려 5가지로 정리했다. 사업계획서를 작성 중이라면, 특히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신청을 앞두고 있다면 아래 5가지 피드백을 통해 심사위원의 마음을 미리 엿볼 수 있길.

피드백1) 고객이 왜 구매해야 하죠?
당시 나는 사업 아이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시장에 진출하면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어!’ 지금까지 이런 서비스는 시장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템의 시장 파이는 점점 커지고 있었으니까.
사업계획서에도 역시 이러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대충 요약하자면. 타겟은 현재 200만 명 이상. 심지어 그 수치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추세. 따라서 그들을 위해 새롭게 만든 서비스! 현재 경쟁사는 여전히 옛날 방식만 고수하는 중. “시장성은 이거면 충분해!”
문제를 발견했는가. 일단 ‘포괄적’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시장분석에서 ‘고객’이 빠져있다. 고객이 왜 구매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없이 단지 시장의 특성과 경쟁사와의 비교뿐이다. 시장이 크고 경쟁사에 없는 서비스라고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닐텐데 말이다.
담당자는 생각보다 이런 식의 시장 분석을 하는 사업주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입에 붙이는 말이 있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세요.’ 결국 시장분석의 핵심은 고객이 겪는 불편함을 어떻게 끄집어내는가에 있다. 만일 경쟁사를 말하고 싶다면 경쟁사에 없는 기술이 아닌 고객이 경쟁사에게 갖는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실무자의 TIP 1. 지금은 거시적인 시장에 대해서만 말씀해주셨는데요. 그보다 고객이 겪는 어떠한 불편함을 우리 제품이 해결해줄 수 있다. 혹은 다른 경쟁사와 비교해서 고객이 우리 제품을 꼭 구매해야 하는 이유 등 고객의 니즈를 명확히 집어 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퇴근 후 두시간’은 바빠서 취미를 즐기지 못하는 직장인을 상대로 ‘두 시간 안에 끝내는 인스턴트 취미 키트 마켓’을 내세웠습니다. 이처럼 초반에는 좁은 시장을 뾰족하게 찔러내는 것이 좋은 접근일 수 있습니다. |

피드백2) 근거는 뭐죠?
사업계획서에 대한 피드백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왜’ 다. 심사위원들은 아주 사소한 주장일지라도 구체적인 근거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고객들이 이러한 불편함을 겪습니다.’ 역시 이에 대한 확실한 근거가 필요했다.
하지만 막상 주장에 대한 근거를 찾기는 쉽지 않다. 경험상 타겟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겪어보니 이렇더라’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통계자료라도 있으면 좋겠다만, 원하는 자료는 꼭 찾으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근거를 만들 것인가. 며칠 책상에 앉아 검색해도 자료가 부족하다면, 직접 발로 뛰어 정보를 구해보자. 담당자는 심사위원은 이러한 준비를 보인 CEO에게 훨씬 높은 점수를 준다는 전언이 있다. 실제 현장에서 얻은 근거야 말로 가장 확실하지 않겠는가.
실무자의 TIP 2. 실제 접근 가능한 고객군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이를 기반으로 가설을 세우고 작은 규모라도 실제로 고객 테스트를 한 결과를 도출해보는 경험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top down의 객관적이고 규모있는 시장분석 자료와 함께 bottom up으로 우리가 직접 현장에서 발로 뛰어 체득한 정보도 함께 담아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피드백3) CEO의 역량
유일하게 칭찬받은 항목은 CEO의 역량이다. 몰랐지만 훌륭한 아이템일지라도 CEO의 능력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떨어질 확률이 높다고 한다. 특히 스타트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현재 딱히 성과(매출)가 없기 때문에 CEO의 역량을 중요하게 볼 수밖에.
그렇다면 괜한 겸손 떨 필요 없다. 팩트 기반의 온갖 자랑을 펼칠 시간이다. 자랑하기 좋아하는 대표님들의 진가가 드러난 순간이다. 3가지를 중점적으로 말했다. 관련 분야의 ‘경력’, ‘자격증’, ‘학사 수료증’. 전문성과 기술력의 핵심 역량을 어김없이 드러내 보자.
실무자의 TIP 3.(통화 내용) 저희도 많은 스타트업과 함께 했지만 결국 CEO가 해당 분야에 전문성과 관련성이 없다면 금방 문을 닫더라고요. 저희 입장에서는 허탈한 거죠. 그래서 CEO의 역량을 중요하게 볼 수밖에 없어요. 정말 이 사람이 얼마나 오래 그 분야에 종사할 것이며, 전문가인지. 사업 아이템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CEO의 창업에 대한 열정과 역량이 훌륭하다면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

피드백4) 초등학생도 알아 듣게
문제 정의를 했고, CEO의 역량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드디어 사업주들이 가장 자신있게 작성하는 항목이 등장한다. ‘어떻게 개발한 것인가?’ ‘이건 자신 있지…!’ 우리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담당자는 두 가지를 꼬집었다.
첫째, 너무 내용이 어렵다고 한다. 사업계획서를 읽는 심사위원은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대한 이해하기 쉽고,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는 것. 우리가 매일 보던 단어는 그들에겐 생소하다. 우리에겐 당연한 사실이 그들에겐 ‘왜?’ 라는 궁금증을 갖게 한다. 그렇다. 결국 아무리 훌륭한 아이템일지라도 심사위원이 이해를 못한다면 아무 소용 없을 터.
둘째, 너무 많은 내용을 담았다. 그 어려운 개발 내용을 너무 자세히 많이 작성했다는 것. 최대한 핵심만 명료하게 작성해야 한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간단하게 보여주면 오히려 전문성 없어 보이진 않을까? 아까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며?
실무자의 TIP 4. 사실 심사위원들 중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있지 않는 이상 기술 개발 과정은 그렇게 자세히 보지는 않아요. 기술개발 분야에서의 현업만큼은 기업이 더 자세하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핵심만 간단하게 작성해서 현실성 있는 나름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게 중요하죠. 보기에도 좋고요. 그리고 전문성은 이미 CEO의 역량을 통해 충분히 보여줬고, 우수한 연구 인력들만 보여줘도 신뢰도를 높이기에는 충분합니다. |

피드백5) 그래서 어떻게 팔건데?
스타트업이 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판매를 하지 못해서라고 한다. 아무리 훌륭한 아이템이라도 결국은 소비자들에게 그 가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기 때문. 그래서 심사위원 역시 판매 계획 혹은 마케팅 전략을 얼마나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잡았는지를 중요하게 평가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 부분을 명쾌하게 작성한 CEO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아무리 해당 분야의 명문대 석, 박사라 할지라도 마케팅은 잘 알지 못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대부분 마케팅 책과 귀동냥으로 어렴풋이 작성한다. ‘무료 체험단, 온라인 마케팅, SNS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와 신뢰도 구축 예정!’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방법은 없다.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도 없다. 그렇다. 바로 그 때 내가 그랬다.
결국 마케팅 전략 부분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체계적으로, 구체적으로!’ 피드백은 이게 전부다. 그렇다면 도대체 구체적인 마케팅 전략은 뭘까. 사실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시작하려 한다면 더욱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지만 사업계획서에선 이에 대한 고민을 한 흔적만 보여줘도 충분하다.
실무자의 TIP 5. 가장 핵심은 타겟 설정이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스타트업일수록 좁은 타겟이 필요하다. 이를 테면 유아자녀를 둔 30-40대 워킹맘 중에서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같이 말이다. 다만 구체적인 타겟은 좋지만 실제로 분류가 가능해야 한다. ‘미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의 엄마’는 확실한 타겟이지만 실제로 이를 일일이 확인 할 방법은 없다. 타겟이 정해졌다면 절반은 성공이다. 그들을 면밀히 분석하자. 어떤 소비 특징을 갖고 있는가, 어떤 미디어를 즐겨 보는가, 라이프 스타일은 어떤가 등. 타겟 분석만 확실해도 결코 위의 사례와 같이 추상적인 마케팅 전략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SNS가 아닌 30~40대가 즐겨보는 카카오 스토리, 그냥 신뢰도 구축 예정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체험해보고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것을 즐기는 3040이기 때문에 블로그 체험단을 통한 신뢰도 확보와 같이 말이다. 타겟을 근거로 한 구체적인 마케팅 전략을 제시한다면, 심사위원은 당신이 타겟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했음을 이해하고 높은 점수를 줄 것이다. 수단을 보기보다는 근거를 중요시한다는 점! |
사실 많은 피드백을 받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탈락의 이유는 한 가지다. 단순 형식에만 맞춰 적당히 작성한 탓. 심사위원이 어떤 생각과 목적으로 우리의 사업계획서를 판단할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결국 사업계획서도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