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톱 제품 디자이너라 불리는 배상민 교수. 세계 유명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을 휩쓸고 다녔으며, 27살에는 능력을 인정받아 뉴욕 파슨스 디자인 대학 교수 역임까지. 매번 창의적인 작품을 내놓는 그에게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항상 창의적일 수 있어요? 비결이라도…?” 그의 대답은 언제나 같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일기를 쓰세요.
제가 본 모든 창의적인 사람은 일기를 쓰거나 항상 메모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전부!”
‘What If’ 일기
다만 그가 말하는 일기는 ‘오늘 ~했다’식의 단순 일상 기록이 아니다. 그는 주변 모든 제품, 인테리어 등 디자인이 들어간 모든 것을 보며 ‘What If’를 생각한다. “만일 내가 책임자라면 이것보다 어떻게 더 낫게 만들까?” 이를테면 카페에 있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평범한 의자를 보면서 말이다.
단 5분 동안 깊게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 일기장에 옮겨 적는다. 만일 5분이 지나도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때까지의 생각만을 적어두고 다이어리를 덮어버린다. 그만의 일기 원칙이기도 하다. 그렇게 매일, 쌓인 일기장만 수 천권. 뉴욕의 모든 스타벅스 매장을 전부 그런 식으로 디자인을 했을 정도라고 한다.

창의성은 일기로부터
그렇다면 이러한 독특한 일기와 그의 창의성은 어떤 관계인가. 그는 세계 디자인 대회에서 수상한 작품 모두 그의 일기장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바로 세계 최고 디자인 어워드, ‘레드닷 어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한 ‘롤리폴리 화분’의 탄생비화다.

‘레드닷 어워드’에 출품할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을 때다. 도무지 번뜩이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그간 써오던 일기장 중 하나를 펼쳤다. 그리고 약 10년전 썼던 한 문장을 본다. ‘오늘 나의 애마가 죽었다’
애마는 그가 기르던 화분에 붙여준 이름이다. 꽃집에서 화분을 샀는데 매번 적정량의 물을 주지 못해 번번히 죽었던 것. 그래서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했지만 딱히 방법을 찾지 못해 그렇게만 적어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10년 후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우연히 본 그 한 문장에서 이번 출품 아이디어를 얻은 것. 5분도 걸리지 않아 작품을 구체화한다. 물이 부족하면 쓰러지고, 적정량의 물을 주면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 같은 화분. 아이디어가 나오기까지 이러한 생각의 과정이 있었다.
“사람이 아프면 쓰러지잖아 “↓”그럼 화분도 물이 부족하면 쓰러지면 되겠네?”↓ “쓰러졌다 일어나는게 뭐가 있지?” ↓”오뚜기! 오뚜기랑 화분이랑 섞으면 되겠네?” |
그 한문장으로 이렇게까지?
갑자기 신빙성이 떨어진다. ‘이건 일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천잰거 아니야?’ 한 문장만 보고 이러한 기발한 생각을 해냈으니 말이다. 물론 이렇게 생각을 확장해나가는 능력은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그가 진정 강조하고 싶었던 건 바로 기록을 통한 ‘Trigger effect'(방아쇠 효과)다.
트리거 효과란 어떤 현상이 일어나도록 촉발시킨다는 의미를 뜻한다. 즉 일기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하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는 것. 어떻게? 그는 수 십년간 일기를 통해 ‘디자인적 문제 해결’을 고민해왔다. 해답이 떠오르든 아니든. 그는 말한다. 우리의 머릿속에 일단 문제를 심어놓으면 뇌는 무의식 중에 그 문제를 푼다고. 당시 해결하지 못한 ‘애마’의 문제를 오랜 시간 지나서야 명쾌하게 해결했듯.
“아이디어는 방아쇠 효과와 같다. 한 순간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축적된 기록과 사고에 의해서 잊혀진 기억 속에서도 뇌에서는 계속 생각하고 있다가 순간 도출되는 것이다”
일단 쏘자
그가 말하는 창의성의 비밀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문제 해결 중심의 일기’ 그리고 그렇게 축적한 ‘수많은 고민과 해결책들’. 어떤이는 눈 앞에 닥친 문제를 풀기 위해 그때부터 고민을 했다면, 본인은 1년, 10년 전부터 일기를 쓰면서 이미 그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남들보다 더 깊은 생각이 나올 수밖에.
과녁에 비유해서 생각해보자. 남들은 과녁 정중앙만을 조준하고 총알(아이디어)을 쐈다면, 그는 일단 총을 쏘고 그 위에 과녁을 살포시 올려둔다. 즉 어떤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면 지금껏 일기를 통해 머릿속에 쌓아둔 생각 중 그에 맞는 한가지를 꺼낼 뿐. 바로 그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언제나 명중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단 5분, 창의성을 위한 일기!
그렇다면 이러한 일기는 꼭 디자이너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람은 디자이너만이 아니니까. 마케터, 헤어디자이너, 요리사 그리고 회사를 운영하는 CEO까지. 책장 깊은 곳 숨어있던 다이어리를 꺼내보자. 속는 셈 치고 따라해보자. 하루 딱 5분이면 되니까. (본업과 관련된 주변을 둘러보면서)
“내가 책임자라면 어떻게 더 낫게 만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