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브랜드가 되는 순간

📌 INDEX

그거 아세요? 펩시는 1950년대에 도입한 파란색 브랜드 컬러를 70년 넘게 지키고 있어요.

그동안 로고도 몇 번 바뀌었고, 서체도 여러 번 손봤어요. 그런데 색만큼은 손대지 않았어요.

단순히 그 색이 좋아서라고 하기엔 너무 오래, 철저하게 지켜왔어요.

그런데 모든 브랜드가 색을 지키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어떤 브랜드는 과감히 색을 바꿔서 오히려 더 단단해지기도 해요.

지키는 것도, 바꾸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색

사람이 무언가를 볼 때, 색은 형태나 글자보다 먼저 인식돼요. 로고 모양을 알아보기도 전에, 글자를 읽기도 전에 색이 먼저 뇌에 도착해요.

그래서 브랜드 입장에서 브랜드 컬러는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신호예요.

신호등도 마찬가지예요. 어디에도 ‘정지’라는 글자가 없어요. 그냥 빨간불이 켜지는 순간, 이미 몸이 먼저 반응해요.

브랜드컬러 글 ‘우리는 색으로 무언가를 느낀다’에서 이야기했듯, 로고를 읽기 전에 색이 먼저 말을 걸어요.

이 인식 속도를 한 번 만들어두면, 브랜드는 아주 유리한 자리를 갖게 돼요.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그 자리를 계속 지킬지, 아니면 다른 자리로 옮겨갈지는 브랜드가 선택해야 해요.

반복이 만드는 브랜드의 컬러

브랜드 컬러는 처음부터 그 브랜드만의 것이 아니에요. 같은 색을 꾸준히 사용할수록, 그 색은 조금씩 브랜드의 것이 돼요.

국내 간편결제 시장을 보면 알 수 있어요. 토스는 파랑, 카카오페이는 노랑, 네이버페이는 아시죠? 이 브랜드들이 각자의 색을 계속 지키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소비자 머릿속에 간편결제 = 이 컬러이라는 공식이 한 번 자리 잡으면, 경쟁사가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내놔도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이에요.

한 브랜드가 특정 색을 오래, 꾸준히 쓰면 다른 브랜드는 그 색을 쓰기가 점점 부담스러워져요. 그렇게 시간이 쌓이면, 그 색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색이 아니라 그 브랜드만의 컬러가 돼요.

안 바꿔서 얻은 것, 바꿔서 얻은 것

브랜드 컬러를 바꾼다는 건 디자인 파일 하나를 수정하는 일이 아니에요.

웹, 앱, 광고, 간판, 포장재까지. 브랜드 컬러가 닿아 있는 모든 접점을 다시 만들어야 해요. 이건 명백한 금전적 비용이에요.

여기에 보이지 않는 비용도 하나 더 있어요. 소비자가 그 컬러를 다시 학습해야 한다는 비용이에요.

그런데 이 비용을 감수하고도 바꾸는 게 나은 순간이 있어요.

에어비앤비는 브랜드 컬러를 바꿔서 오히려 입지를 굳힌 사례예요.

초기엔 여행·숙박 업계에 흔했던 파란컬러를 쓰다가, 2014년 리브랜딩을 하면서 산호빛 코랄 컬러로 완전히 바꿨어요. 파란 컬러만 사용하던 여행·숙박 업계에서 에어비앤비만의 컬러로 확실히 구분되면서, 브랜드 인지도가 오히려 더 단단해졌어요.

인스타그램도 비슷한 사례예요.

처음 로고는 실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닮은 모습이었어요. 꽤 사실적인 카메라 디자인이었죠.

그러다 2016년, 로고를 지금의 그라디언트 아이콘으로 완전히 바꿨어요. 갈색 카메라가 사라지고 보라·분홍·주황의 화려한 그라디언트 컬러로 넘어간 거예요.

당시엔 “정체성을 잃었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홈 화면의 수십 개 아이콘 사이에서 오히려 더 눈에 띄는 브랜드 컬러가 되었고, 사람들은 카메라 모양보다 그라디언트 컬러만 봐도 인스타그램을 떠올리게 됐어요.

이 사례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색을 지키든 바꾸든, 중요한 건 그 선택이 얼마나 분명한 이유와 방향을 갖고 있느냐예요. 아무 이유 없이 흔들리면 인식이 흐려지고, 분명한 전략 아래 움직이면 오히려 더 선명해져요.

색이 브랜드의 것이 되는 과정

색은 이미지 이상의 것이기도 해요. 특정 산업에서는 컬러 자체가 상표로 등록돼서 법적으로 보호받아요.

대표적인 예가 티파니의 로빈스 에그 블루예요. 이 컬러는 팬톤 넘버로 지정돼 상표 등록까지 돼 있어요.

그런데 아무 색이나 이렇게 보호받는 건 아니에요. 소비자가 그 색만 보고도 “아, 이 브랜드!”라고 떠올릴 만큼, 오랫동안 한 색을 흔들림 없이 써왔다는 걸 증명해야 해요.

법에서는 이걸 ‘2차적 의미’라고 불러요. 컬러 자체에는 원래 없던 의미가, 반복된 사용으로 새로 생겨났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브랜드들이 컬러 가이드라인을 꼼꼼하게 만드는 거예요.

팬톤 번호 하나, 사용 비율 하나까지 문서로 못박아두는 건 예뻐 보이려는 게 아니라, 그 컬러를 자산으로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셈이에요.

물론 이 자산을 내려놓고 새로운 컬러를 선택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전략이에요.

결국 색은, 브랜드를 기억하게 만드는 일

정리하면 이래요.

색은 가장 빨리 인식되고, 꾸준히 쓸수록 그 색이 내 것이 되고, 지키는 데도 바꾸는 데도 비용이 따르고, 어떤 경우엔 법적으로 보호까지 받아요.

브랜드가 컬러를 지키든 바꾸든, 그건 감성적인 고집이나 변덕이 아니에요. 아주 계산된 선택이에요.

결국 중요한 건 색 자체보다, 그 색을 얼마나 일관되게 사용하느냐예요. 사람은 반복해서 본 색을 더 빨리 인식하고, 더 오래 기억하니까요.


written by 디자이너이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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