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유튜브를 잘 안 봐요. 마케팅 회사에 다니고는 있지만 유튜브 숏츠나 영상에 큰 흥미를 못 느낀다고 할까요?(그렇다고 트랜드와 동떨어진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그런데 개그우먼 이수지의 ‘핫이슈지’ 채널은 눈이 가더라고요. 특히 최근에는 간호사 부캐 영상을 보는데,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업무에 찌들어 기름진 앞머리, 장시간 마스크 착용으로 남은 선명한 자국까지. 간호사로 일해 본 적은 없지만 실제 3년 차 간호사가 저렇게 생겼을 것 같은, 소름 돋는 현실감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제이미맘도 마찬가지예요. 대치동 학부모 특유의 말투, 영어를 자연스럽게 섞는 방식, 몽클레르 패딩에 에르메스 슬리퍼까지. 어찌나 정확하게 묘사했는지, 제이미맘이 착용한 명품 브랜드들의 중고거래 건수가 수백에서 최대 900%까지 급등하며 “명품 장례식”이라는 표현까지 나왔잖아요.
영상을 몇개 보다보니 그냥 웃기려고 만든 캐릭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을 흉내내는 콘텐츠는 많지만 이수지의 콘텐츠가 이렇게 큰 공감을 사는 건 관찰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흉내와 이해는 다르다
이수지 본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특정인을 따라하려고 한 게 아니다. 일상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여기에 핵심이 있어요. 이수지의 부캐는 누군가를 흉내 낸 게 아니에요. 그 유형의 사람을 이해한 거예요.
흉내는 겉모습을 복사하는 일이에요. 말투를 따라 하고, 행동을 따라 하는 것. 근데 이수지의 캐릭터들은 달라요. 간호사 박소현이 컵라면을 제때 먹지 못하는 이유, 정시 퇴근을 못 하는 상황, 그 피로감이 얼굴에 어떻게 쌓이는지까지 담겨 있죠. 제이미맘이 영어를 섞는 게 단순한 허영이 아니라, 그 세계 안에서의 소속감을 증명하는 방식이라는 것도요.
겉만 보면 흉내가 나오고, 안까지 보면 이해가 나와요. 그리고 그 이해에서 나온 캐릭터가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고 있는 거죠.

흉내와 이해는 전혀 다른 이야기
관찰이 통찰이 되는 순간
사실 우리 모두 매일 사람을 보며 살아요.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회사에서. 수많은 사람을 스쳐 지나가죠.
근데 보는 것과 관찰하는 건 분명 달라요. 보는 건 그냥 눈에 담는 거고, 관찰은 거기에 질문을 더하는 거예요.
“왜 저 사람은 저런 말투를 쓸까?”
“저 표정 뒤에는 어떤 감정이 있을까?”
“저 사람이 가장 지쳐있는 순간은 언제일까?”
이 질문들이 쌓이면 관찰을 넘어서 통찰이 돼요. 이수지가 학창시절부터 선생님을 성대모사해 친구들을 웃겼다고 했는데, 그게 그냥 목소리를 흉내 낸 것 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아마도 그 선생님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투를 쓰는지, 어떤 순간에 특유의 표정이 나오는지를 오래 들여다봤을 거예요. 그 습관이 쌓여서 지금의 이수지가 된 거겠죠?
이수지가 관찰하는 재능을 타고 났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관찰은 습관이라고 생각해요. 보이는 것 너머를 궁금해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습관.

진짜 보석을 찾아내고야 마는 노련한 보석 감별사처럼.
마케팅도 결국 같은 일이에요
어쩌면 마케팅 신에서도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브랜드들이 고객을 ‘타겟’으로 봐요. 30대 여성, 수도권 거주, 소득 중상위. 숫자와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그 카테고리에 맞는 메시지를 만들죠. 근데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나 광고로 고객의 공감을 사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사실은 업계 사람이라면 모두 인지하고 있을 거예요.
그 이유가 뭘까요? 아마 그건 ‘관찰’이 빠졌기 때문일 거예요.
진짜 마케팅은 이수지가 부캐를 만드는 방식이어야 해요. 고객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어떤 순간에 지치고 어떤 순간에 웃는지,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이거 내 얘기잖아”라고 느끼는지를 오래 들여다보는 일 말이에요.
간호사 박소현이 현직 간호사들을 울린 건, 그 직업의 고단함을 숫자로 이해한 게 아니라 감정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에요. 마케터가 고객을 그렇게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의 마음에 닿는 메시지가 전달되죠.

공감은 관찰에서 온다
이수지의 부캐가 그토록 많은 공감을 사는 이유는 단순해요. 사람들이 자기 안에서 그 캐릭터를 발견하기 때문이에요. “저거 나잖아”, “저거 우리 엄마잖아”, “저거 우리 팀장님이잖아.”
그 발견의 순간이 웃음이 되고, 공감이 되고, 공유가 되죠.
브랜드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이 어떤 메시지를 접했을 때 “이거 내 얘기잖아”라고 느끼는 순간, 그 브랜드는 더 이상 브랜드가 아니에요. 내 편이 되는 거랍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절대로 책상 앞에서만 만들어지지 않아요. 사람을 오래, 깊이, 진심으로 들여다봤을 때만 가능한 일이랍니다.
이수지가 매번 새로운 부캐를 만들 때마다 “또 찢었다”는 반응이 나오는 건, 결국 그가 사람을 보는 눈이 그만큼 깊기 때문아닐까요?
결국, 관찰이 쌓이면 통찰이 되고, 통찰이 쌓이면 공감이 됩니다.
사람을 제대로 보는 것.
좋은 마케팅도, 좋은 코미디도, 그 시작은 이거 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written by 마케터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