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그랬냐는 듯, 코로나도 기억 너머 사라지는 중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봄이 찾아 온 셈이죠. 마음 다잡고 의욕적으로 움직입니다. 주변 대표님들 몇 분만 만나봐도 에너지가 사뭇 다릅니다. 새로운 변화를 위해 회사 브랜드를 리브랜딩 하려는 움직임들도 분주합니다. 그래서 요즘 리브랜딩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며 지냅니다.
리브랜딩(Rebranding), 단어 그대로 브랜딩을 다시 한다는 뜻입니다. 브랜드의 이미지를 다시 정립해 고객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인식시키는 작업이죠.
브랜딩이라는 것이 원래 그 당시의 사회적인 부분, 그리고 소비적인 부분의 트렌드를 고려하여 진행되긴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트렌드라는 것이 너무 빨리 변화한다는 거죠. 이 부분에서 기업들이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마케팅 방법도 바꿔보고 이벤트성 상품들도 출시해 봅니다. 그러다가 가장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카드가 브랜드 이미지 자체를 바꿔버리는, 이 리브랜딩이겠죠.
기업들은 시각적인 무언가가 확 바뀌게 되면, 성공적인 리브랜딩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가장 대표적인 로고 디자인을 바꿔보려고 해요. 물론 로고 디자인의 변화도 리브랜딩에서 중요하긴 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바탕 없이 로고 디자인만 변화한다고 성공적인 리브랜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리브랜딩, 로고만 바꾸면 끝?
미국의 signs.com에서 진행한 실험을 하나 볼게요. 미국인 성인남녀 150여 명을 대상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로고 디자인을 그릴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실험입니다. 차례대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타벅스, 도미노피자, 그리고 버거킹의 로고입니다.
확대하면 자세히 보실 수 있어요.
보는 것과 같이 로고 디자인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복잡한 형태의 스타벅스의 로고 디자인을 ‘그나마’ 제대로 그려낸 사람이 고작 6%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고객이 브랜드를 인지하는 과정에서 로고의 생김새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
고객은 브랜드를 어떻게 인지할까?
로고 디자인은 그저 고객이 경험으로 얻은 브랜드 이미지를 떠올리는 작은 매개체에 불과하죠. 브랜드를 대표한다고 생각했던 로고 디자인이 아니라면,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브랜드를 인지하고 있을까요?
우리들에게는 어떤 브랜드를 소비할 때 생겨나는 편견이나 선입견이 있을 것입니다. 애플의 아이폰을 구매해서 들고 다녔더니 모두가 나를 트렌디한 사람으로 봤다는 경험, 스타벅스에서 시즌마다 새로운 디자인의 카드나 한정판 MD를 출시하면 가장 먼저 구매하러 갔던 경험 등, 그 브랜드를 소비하며 일어나는 모든 경험으로 브랜드를 인지하게 됩니다. 애플은 ‘역시 비싼 값을 하는, 트렌디한 브랜드’, 스타벅스는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르는 시즌별 한정판 MD’로 기억할 수 있습니다.
리브랜딩은 단순히 로고 디자인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각인되어 있는 브랜드의 이미지와 선입견을 바꾸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리브랜딩은 ‘기업의 입장이 아니라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이미지를 바꾼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흔한 예로 배우들이 대중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끊임없이 이미지 변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히트작을 하나 잘못 만나면(?) 그 캐릭터의 이미지가 그대로 굳어져 버리는 부작용을 겪기도 하는 것처럼요.
그렇기 때문에 리브랜딩은 사전에 구체적인 계획 없이 섣부르게 시작하기 위험한 작업입니다. 리브랜딩이 실패했을 경우 기업에선 빠르게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지만, 이미 떠난 고객의 마음을 돌리는 일은 단시간에 되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매출과도 직결되는 문제죠.
리브랜딩 성공 사례 📈
소비자의 마음을 읽다. #햇반
햇반은 이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즉석밥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1996년 당시 첫 출시된 햇반의 기술력은 굉장히 혁신적이었습니다. 전자레인지에 2분, 끓는 물에 10분만 익히면 되는 밥! 햇반의 콘셉트는 ‘정말 간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밥’이었습니다. 출시 직후 매출은 약 45억 원에 달할 정도로 성공적이었죠.
하지만 인기는 금방 식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매출이 300억 원도 채 달성하지 못할 정도로 고전을 면치 못했죠.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햇반이 너무 지나치게 간편한 바람에, 주부들의 죄책감을 자극한 것이죠.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고 있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즉석식품을 사용하는 것은 주부들이 살림에 소홀하기 때문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문제점이었습니다.
햇반은 즉시 브랜드의 콘셉트를 바꿔버리는 리브랜딩을 시도했습니다. 편리하고 맛있다는 콘셉트에서, 주부들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콘셉트로 변경한 것이죠. 이에 따라 새로운 광고와 카피도 등장했습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만큼
햇반은 잘 만들었습니다.
주 소비자가 주부들인 점을 감안해서 ‘엄마가 해 준 것처럼 맛있는 밥’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적용하여, 주부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죠. 2012년 출시 이후 연 매출이 약 1000억 원에 달했고, 그 해 판매된 햇반의 수량은 출시 직후 판매된 수량의 약 20배나 되었다고 합니다. 햇반의 이 성공적인 리브랜딩 스토리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고 동감해 주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리브랜딩 실패 사례 (1) 📉
예쁘다고 능사는 아니야, #트로피카나
트로피카나의 리브랜딩 사례는 유명합니다. 지난 2009년, 트로피카나는 패키지와 로고 디자인을 새롭게 리브랜딩 했습니다. 로고 디자인도 깔끔한 산세리프로 변경하고, 제품명이 표기되는 레이아웃도 마치 해외 잡지처럼 감각적으로 디자인한 듯 보였습니다.
기존의 패키지 디자인(좌), 리브랜딩 된 패키지 디자인(우)
새로운 디자인이 각종 SNS에 퍼지며 해외 언론에서조차 혹평을 쏟아냈습니다. 기존에 있던 빨대 꽂힌 오렌지 사진이 사라지면서, 싱그럽고 신선한 느낌이 사라졌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약간 올드한 느낌이지만 소비자에게 친숙했던 로고 디자인의 변경도 그리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죠. 소비자와 브랜드 사이의 정서적인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예쁘게 만드는 것에만 집중한 결과였습니다.
디자인을 바꾼 지 두어 달만에 매출은 20%나 급격하게 하락했습니다. 결국 트로피카나는 디자인을 바꾼 지 2개월 만에 다시 원래의 디자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례는 리브랜딩 실패 사례로 대표적입니다. ‘특별히 문제점이 없다면 섣불리 고치려고 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있죠.
리브랜딩 실패 사례 (2) 📉
브랜드와 소비자의 갭, #GAP
이 로고 디자인의 변화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유명 의류 브랜드인 갭(이하 GAP)이 새로운 로고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기존의 독특한 세리프체의 로고 디자인을 버리고, 당시 많은 사랑을 받던 산세리프체를 적용한 로고 디자인이었습니다.
기존 로고(좌), 변경된 로고(우)
반응은 생각보다 더욱 최악이었습니다. 이 로고를 사용하면 불매운동을 하겠다는 항의전화가 빗발쳤고, 갭 공식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비난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했던 갭 측은 페이스북을 통해, 더 좋은 로고 디자인이 있다면 추천해 달라며 소비자들을 진정시키기 바빴지만, 불만의 소리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결국 갭은 이전의 로고 디자인으로 돌아가겠다고 발표하고 말았습니다. 자사의 브랜드 디자인에 대해 소비자가 오랜시간 쌓아온 편안함과 친숙함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례로 손꼽히고 있죠.
리브랜딩 실패 사례 (3) 📉
무리수는 이제 그만, #코카콜라
코카콜라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유명 브랜드죠. 그런데도 뭐가 그렇게 조바심이 나고 불안했던 건지, 간혹 알 수 없는 변화들로 소비자를 당황시키곤 했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로고 디자인의 리브랜딩입니다.
뉴-코크 디자인(좌), 리미티드 에디션 화이트 패키지(중), 재출시된 레드 패키지(우)
코카콜라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콜라가 바로 펩시콜라죠.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던 펩시콜라를 견제하던 코카콜라는 큰 결심을 합니다. 기존의 클래식한 레터링 로고 디자인을 바꿔버린, ‘뉴 코크’라는 콘셉트로 새로운 디자인을 공개한 것이죠. 브랜드 컬러는 그대로였지만, 코카콜라의 대표적인 필기체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무리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소비자의 항의 메일이 빗발치자, 결국 이 뉴 코크는 3개월 만에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소비자와 시장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해서 벌어진 이 사건은, 미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위험하고 멍청하고 엉뚱한 최악의 발명품 50’에 선정될 정도였죠.
코카콜라의 무리수는 계속되었습니다. 바로 2011년, 코카콜라가 겨울 시즌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화이트 패키지입니다. 기존의 코카콜라 디자인처럼 레드 배경에 화이트 컬러 레터링을 반대로 반전시킨 디자인이었습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마치 다이어트 콜라 같다는 혹평과, 맛도 변한 것 같다는 항의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비난에 시달리던 코카콜라는 결국 생산을 중단하고, 트레이드 마크인 레드 패키지로 재출시하고 말았습니다. 코카콜라의 이미지는 소비자들에게 너무나도 확실하게 자리 잡혀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리브랜딩 작업에 있어 신중하고 세심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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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브랜드는 리브랜딩 작업에 굉장히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합니다. 그런데도 성공하는 사례만큼 실패하는 사례들도 많답니다. 그 정도로 리브랜딩 작업은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으로, 아주 정교하고 예민한 부분입니다.
단순히 새롭게 바꿔보고 싶다거나, 마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컴퓨터를 재부팅하는 일처럼 시작하는 프로젝트는 아닙니다. 리브랜딩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신중하게 생각하고 많은 사전 계획 후에 조심스럽게 진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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