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애플의 신제품 라인업이 공개됐습니다. 역시나 ‘아이폰 16’에 이목이 집중됐죠. 기대만큼 변화가 크진 않았지만, 주목할 만한 변화 몇 가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우선 USB-C 포트 도입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기대를 모았던 애플 인텔리전스는 한국어가 포함되지 않으면서 조금 실망했죠. 또 다른 큰 변화는 카메라 물리 버튼의 부활입니다. 사실 2007년 첫 출시부터 터치스크린 방식을 채택했었기 때문에 부활보다, 도입이라는 표현이 더 걸맞겠습니다.
터치 방식에서 ‘물리 버튼’으로.. 왜?
2007년, 아이폰의 혁신적인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는 스마트폰 시장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그런데 17년 만에 물리적 버튼으로 새로운 시작을 알립니다. 이 물리 버튼은 단순히 아날로그로의 회귀가 아닌, 사용자 경험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물입니다.
과거 터치스크린의 장점은 무엇보다 ‘무한한 가능성’에 있었습니다. 화면 위에서 어떤 인터페이스든 구현할 수 있었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유연성이 때로는 단점으로 작용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지점이 바로 이 ‘카메라’ 기능. 밝은 햇빛 아래에서 화면이 잘 보이지 않을 때, 또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촬영해야 할 때 터치스크린은 오히려 방해가 되곤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찍힌 건가 하는 ‘손맛’이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반대로 물리적 버튼은 촉각을 통해 빠른 피드백을 전해 줍니다. 손가락 끝으로 버튼의 위치를 느끼고, 누르는 순간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려 줍니다. 사용자 입장에서 더 직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경험입니다. 특히 카메라처럼 순간의 포착이 중요한 기능에서의 물리적 피드백은 더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죠.
애플의 이번 결정은 기술의 진보가 반드시 물리적 요소의 제거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장점을 결합해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미니멀리즘에서 ‘실용주의’로
애플은 오랫동안 미니멀리즘 철학을 고수해 왔습니다.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애플의 모토였죠. 하지만 이번 카메라 버튼의 도입은 새로운 유형의 미니멀리즘의 탄생을 시사합니다. 바로 실용주의와의 융합, 혹은 실용주의로의 전환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실용주의 기조는 이론보다는 실제적인 결과와 경험을 중시합니다. 애플의 이번 결정도 결이 같습니다. 미니멀한 디자인이 항상 최고의 사용자 경험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이 반영된 것. 비단 애플만의 변화가 아닙니다. 전체적인 디자인 트렌드가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에서 벗어나 사용자의 실제 니즈에 더 집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건 이종의 산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분야가 자동차 업계입니다. 테슬라의 사이버트럭은 이러한 실용주의적 접근의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극도로 단순화된 외관 디자인은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생산 비용을 낮추고 내구성을 높이는 실용적인 목적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시각적 묘미와 기능성 추구의 절묘한 균형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폴스타(Polestar)의 경우, 최근 디자인 철학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폴스타 2 모델은 여전히 미니멀한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일부 물리적 버튼을 재도입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앙 콘솔에 볼륨 조절 노브를 추가하고, 스티어링 휠에 다기능 버튼을 배치했습니다. 순수한 미니멀리즘에서 벗어나 사용자의 편의성을 고려한 실용적 접근을 잘 보여주는 사례죠.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브랜드도 실용주의적 접근을 잘 보여줍니다. 아이오닉 5와 6 모델은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채택하면서도, 사용자 경험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습니다. 특히 ‘리빙 스페이스’ 콘셉트를 도입하여, 차량 내부를 단순히 운전을 위한 공간이 아닌 생활의 연장선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아이오닉은 단순히 미니멀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의 니즈를 반영한 결과입니다. 아이오닉 5의 경우, 중앙 콘솔을 슬라이딩 방식으로 설계하여 공간 활용도를 높였고, 운전석과 조수석에 레그 레스트를 장착하여 충전 중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 지속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여 환경 친화적인 면모를 강조하기도 했죠.
(이동 수단이라는 개념을 넘어 주행하는 동안의 시간과 공간을 재창조한다는 현대자동차의 ‘세븐’. 현대자동차는 ‘세븐’을 집에서와 같이 여가 시간을 즐기고, 업무를 처리하며, 다른 사람과 유연하고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는 디바이스라고 소개한다)
역시나 공통점은 단순히 미니멀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실제 생활과 니즈’를 고려해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기조를 조금 멀리서 조망하면, 전반적인 사회 트렌드가 미니멀리즘 지향에서 사용자 중심의 실용주의로 전환되고 있음이 감지됩니다. 외형(디자인)은 단순함을 유지하면서도, 내형(기능과 활용)은 사용자의 편의성과 실제 생활에서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브랜드 경영자를 위한 마인드셋 제언
슬쩍 고개를 들고 있는 실용주의를 단순한 ‘디자인 트렌드’ 변화쯤으로 오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가치관과 니즈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앞서 살펴 본 사례가 그 변화를 반영한 기업들의 앞선 움직임이라고 해석함이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브랜드 경영자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우리도 무언가 변화가 필요합니다.
당장 무언가를 크게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현상을 이해했다면,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는 예열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도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 아래 그 내용을 간단히 공유드립니다.
1. 우선, 고정관념에서 벗어납시다.
‘최신 기술이 항상 최고’라는 생각이나 ‘전통적인 방식은 구식’이라는 편견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제품이나 서비스가 자신의 실제 생활에 얼마나 유용한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따라서 브랜드 경영자들은 기술이나 디자인 자체가 아닌, 그것이 제공하는 실질적인 가치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2. 알맹이는 ‘사용자’ 그리고, ‘경험’
실용주의로의 전환은 사람들이 더 나은 경험을 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외적인 모습보다는 실제 사용 상황에서의 편의성과 만족도가 중요해졌습니다. 이는 브랜드 경영자들이 지속적인 사용자 피드백 수집과 분석을 통해 실제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제품 개발에 반영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3. 고객 관점 탑재하기.
미니멀리즘이나 첨단 기술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를 브랜드의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훌륭한 제품이나 서비스도 단순히 기능이나 디자인에 의존한다면 생명력을 금방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내가, 우리 브랜드가 고객의 삶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세요.
4. 도전하세요. 과감히.
애플의 사례처럼, 때로는 기존의 철학을 뒤집는 결정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리스크가 동반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혁신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브랜드 경영자들은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5. 관점은 언제나 장기적으로.
실용주의로의 전환은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닌, 인간의 근본적인 가치관 변화의 기조입니다. 따라서 브랜드 경영자들은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하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가치 창출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브랜드의 진정성을 더하고, 결과적으로 높은 고객 신뢰와 충성도를 꿰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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