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법무법인과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메일이 왔습니다. 마케팅 상담, 문의 요청이에요. 그런데 보통의 요청과 톤이 조금 다릅니다. 체감상 다짜고짜 사무실로 방문해 달라는 느낌, 아니 사실상 그런 명(命)같이 느껴졌습니다. 변호사님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셨다면서. 우리는 정중히 비대면 화상 회의를 제안했습니다. 안건도 명확치 않은 상태에서 서로의 시간을 소비하는 게 옳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화상 회의 당일, 정작 회의에는 변호사가 아닌 담당 직원만 참석했습니다. 그마저도 핵심을 비켜가는 질문들만 던지며 마치 변호사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듯했습니다. 이후 소개 자료와 견적 문서 핑퐁이 오갑니다. 그리고 다시 온 답변. ‘변호사님께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세요. 한 번 오시겠어요?’
만났습니다. 대면 미팅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변호사님이 등장하지 않았거든요. 이번에는 ‘총괄’이라는 조금 더 높아 보이는 직함의 또 다른 대리인이 나타납니다. ‘변호사님들이 이런 것을 궁금해하신다’며 간접적인 소통만 이어갔습니다.
대화 내내 담당자님과 총괄님이 괜히 위축되어 보였어요. 무슨 질문을 해도 ‘변호사님께서는…’으로 시작하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정작 왜 그게 필요한지,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글쎄요…?’라는 답변으로 말을 흐리기만 했죠.

보이지 않는 벽, 권위주의
권위주의는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수동적인 전달자로 만들어버립니다. 목적에 대한 ‘왜’가 빠진 채 그저 상사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데만 집중하게 되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구조는 결정권자인 경영자 역시 답답하게 만듭니다. 진짜 현장의, 진짜 마케팅 실무자의 제대로된 의견을 들을 수 없으니까요.
한 달 반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같은 내용을 수없이 설명했습니다. 여러 차례 견적을 조정했지만, 결국 그들로부터의 연락은 끊겼습니다. 사실상 잠수였죠. 전화를 했고, 받지 않길래 문자도 남겼습니다. 영원히 콜백은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사이였는데, 왜 그 담당자는 우리의 연락을 피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권위 있음’이 ‘예의 없음’은 아닐 텐데, 아마도 그 역시 위아래로 난처한 상황에 놓였을 게 분명합니다. 상사의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그리고 우리와 조직 사이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겠지요. 바로 권위주의가 만들어 낸 비극입니다.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고, 결국 아무도 원하지 않는 단절로 끝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권위의 틀에 갇힌 마케팅
이런 일은 비단 외부 협업 관계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업(조직) 내부에서도 보이지 않는 ‘권위’가 나올 법한 성과를 가로막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표자나 상급자가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복잡한 보고 체계를 만들거나, 모든 결정을 자신을 거쳐가도록 하는 구조를 고집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죠.
더 안타까운 건 이러한 권위주의적 태도가 팀원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억압한다는 점입니다. 젊은 직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는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라며 묵살되고, 외부 전문가의 제안은 “우리 회사 사정을 모르니까 하는 소리”라며 무시됩니다. 결국 마케팅은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며 정체되고,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됩니다.

전문성과 권위의 혼동
많은 조직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지위’와 ‘전문성’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높은 직급에 있다고 해서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되진 않습니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마케팅 분야라면 더 그렇고요.
그래서 외부 전문가나 대행사와 협업할 때는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시간 절약이나 효율성을 위해 내부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위임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갖지 못한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후자의 경우라면 권위의식은 완전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전문가를 전문가로, 아니 우선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협업이 가능해집니다.
수평적 소통이 만드는 시너지
마케팅 성공 사례라는 사례(?)들을 잘 들여다 보면, 다양한 관점이나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환경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나 직급에 관계없이 좋은 아이디어는 좋은 아이디어로 평가받아야 하고, 전문가의 의견은 전문가의 의견으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제가 만난 성공적인 브랜드들도 하나같이 수평적 소통 문화, DNA를 갖고 있었습니다. 대표가 직접 실무자와 대화하고, 외부 전문가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비교적 젊은 직원의 아이디어도 진지하게 검토해요. 이런 조직에서는 마케팅이 살아 숨쉬듯 움직이고, 그렇게 성공적인 캠페인이 탄생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런 기업, 브랜드의 구성원들은 ‘왜’라는 질문을 서슴없이 묻고 답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윗사람의 지시, 명령에 따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지 명확히 이해하고 움직입니다. 세밀하게 움직이는 조직은 OKR까지 잘 설계해 역동성을 더하기도 합니다. 이런 게 바로 능동적인 조직 문화의 핵심이죠.
존중이 만드는 변화
여기서 핵심은 ‘존중’입니다. 상대방의 존엄을 존중하고, 시간을 존중하며, 의견을 존중하는 것. 존중하는 자세야 말로 성공적인 협업의 기초라고 봅니다. 권위주의가 이런 존중의 문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고요.
앞서 언급한 법무법인의 사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결정권자가 직접 참여해서 투명한 대화를 나눴다면 어땠을까요? 목적과 이유, 방안, 장단점, 득과 실 등등. 나아가 서로의 존엄과 시간, 의견, 전문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접근했다면?
똑같은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하더라도, 서로 그 과정에서 무엇이라도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최소한 ‘시간 낭비’라는 오명을 쓰지는 않았겠죠.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도 보다 나은 결정과 생산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에게 찜찜함만 남는 ‘잠수’라는 불편한 마무리도 피할 수 있었겠고요.

우리의 작은 바람
권위주의는 조직을 경직되게 만들고, 창의성을 억압하며, 효율성을 떨어뜨립니다. 더 나아가 사람을 위축시키고 수동적으로 만들며, 결국에는 관계마저 단절시킵니다. 특히 소통과 창의성이 핵심인 마케팅 영역에서는 더욱 치명적이에요. 될 수 있는 마케팅도 안 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권위주의입니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권위의 갑옷을 벗고 전문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해요. 나이와 직급을 떠나 서로를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각자의 전문 영역을 존중할 때 진정한 시너지가 발생합니다.
마케팅은 결코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전문성이 모여 만들어내는 일종의 종합예술에 가깝습니다. 권위주의라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협업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한 마케팅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업 문화가 우리 비즈니스 생태계에 뿌리내리기를 희망합니다. 그 문화가 바로 될 마케팅을 되게 만드는 큰 원동력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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