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원의 ‘시절인연’이라는 곡을 참 좋아해요.(잠깐, 생각보다 나이 많지 않음)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가삿말 때문인 것 같아요. 노래를 들을 때 리듬에 집중하는 사람과 가삿말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 후자에 가깝거든요.
마케터로 일하다 보면 수많은 고객사 담당자를 만나고, 그분들을 통해 또 수많은 고객을 간접적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마음 먹은대로 성과가 나질 않거나 광고를 돌렸는데도 고객에게 외면받는 순간들을 지켜보며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브랜드와 고객의 만남도 결국 시절인연이 아닐까.’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니까요.

세대를 거듭해도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나. 난 그렇게 생각해.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어요
시절인연(時節因緣). 불교에서 온 말인데,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뜻이에요. 인연도, 만남도,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것도 다 그게 될 때가 되어야 된다는 개념이죠.
돌아보면 그런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거예요. 분명 예전에도 알고 있었던 브랜드인데, 어느 날 갑자기 그게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요. 메뉴판에서 몇 번이나 봤던 메뉴를 어느 날 처음 시켜보고 “왜 이제야 먹었지”하는 순간처럼요. 브랜드는 그대로였는데, 내가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된 거예요.
반대로 아무리 좋은 브랜드도, 때를 못 만난 고객에겐 그냥 스쳐 지나가요. 광고를 봤지만 기억에 안 남고, 추천을 받았지만 별 감흥이 없고. 그 브랜드가 나쁜 게 아니에요.
그냥 아직 때가 아닌 거예요.

시절인연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아요.
억지로 잡으려 할수록 멀어져요
마케팅 현장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 있어요. 고객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브랜드가 너무 세게 밀어붙이는 일들이요.
끊임없이 쏟아지는 푸시 알림, 한 번 클릭했다고 며칠 동안 따라다니는 광고, 아직 관계도 안 쌓였는데 바로 구매를 유도하는 메시지. 브랜드 입장에선 열심히 하는 거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어지잖아요.
인연도 마찬가지예요. 억지로 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게 인연이에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아무리 잘해줘도, 그 마음이 닿기 어렵거든요. 때로는 조용히 존재하는 것 자체가 더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해요.
관심 끌기에 급급한 브랜드보다,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브랜드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도 바로 이 이유예요.
브랜드가 해야 할 일
그렇다면 브랜드는 그냥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까요?
아니에요.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수동적으로 기다리라는 뜻이 아닌 것처럼, 브랜드도 손 놓고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예요.
인연이 왔을 때 놓치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준비하는 것.
고객이 준비됐을 때 떠올릴 수 있는 브랜드가 되는 것.
처음 만났을 때 “이 브랜드, 믿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주는 것.
한 번의 만남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다시 생각날 때 자연스럽게 돌아오고 싶은 곳이 되는 것.
그러려면 결국 신뢰가 있어야 해요. 일관된 태도가 있어야 해요. 진심이 있어야 해요.
이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아요. 고객을 만나기 훨씬 전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것들이 인연의 순간에 비로소 빛을 발합니다.

언젠가 만날 고객을 위해 매일, 조금씩.
좋은 인연은 오래가요
시절인연의 또 다른 의미는, 때가 되어 만난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
딱 맞는 순간에 만나서 좋은 경험을 한 고객은 쉽게 떠나지 않아요. 할인이나 이벤트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 브랜드를 좋아하게 된 고객은 오히려 브랜드의 편이 돼요. 주변에 알리고, 실수를 한 번쯤은 눈감아주고, 함께 성장하고 싶어 하죠.
그 관계는 마케팅 비용으로는 만들 수 없어요. 브랜드가 오랫동안 진심으로 자기 자리를 지켜왔을 때 얻을 수 있는 거예요.
때를 기다리는 동안 포기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조용히 존재해온 시간이 쌓인 결과인 거죠.
마케터로 일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들은, 브랜드와 고객이 딱 맞는 때에 만나는 걸 옆에서 지켜볼 때였어요. 그건 광고 캠페인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었어요. 브랜드가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와 태도가, 준비된 고객을 만나는 순간이었죠.
결국 좋은 마케팅이란, 인연을 억지로 만드는 게 아니에요. 인연이 왔을 때 그게 인연인 줄 알아볼 수 있도록 브랜드를 그만큼 진심으로 가꾸는 시간이 저절로 만들어내는 거예요.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어요. 브랜드도, 고객도 마찬가지예요. 그 때를 믿으면서 오늘을 성실하게 쌓아가는 것. 어쩌면 그게 마케팅의 가장 오래된 진리일지 몰라요.
언젠간 마주할 시절인연을 위해 우리 브랜드는 어떤 콘텐츠를 어떻게 담아야 할까요?
written by 마케터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