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성공을 전제로 제안서를 씁니다. 장밋빛 전망이 가득한 기획을 정비하죠. 긍정적인 목표 설정이 몹시 중요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실패라는 단어 자체를 금기시합니다. 마치 실패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불길한 일이 생길 것처럼.
우리 마케팅 업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마케팅은 성과로 말하는 일이라고 배웠습니다. ROI로, 때로는 ROAS로, 또 전환율로, 매출 증가로 우리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힙니다.
개인적으로 오히려 이런 태도가 더 큰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일주, 한 달의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면서 근시안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고, 정작 중요한 것들은 놓치게 되고 있다고. 실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혁신을 가로막습니다. 누군가 닦아 놓은 듯한, 그럴싸한 레퍼런스만 따라하게 하죠.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끄적이게 됐습니다.

통제 불가능한 ‘변수의 바다’
마케팅 실무 중심에 있다 보면 정말 많은 변수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우리가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한 캠페인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목을 잡히곤 하죠.
시장은 늘 예측 불가능합니다. 경쟁사가 갑자기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런칭할 수도 있고, 소비자들의 관심이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할 수도 있어요. 사회적 이슈나 경제 상황의 변화, 심지어 날씨까지도 우리 캠페인에 영향을 미칩니다.
내부 환경도 고르지 못합니다. 팀원들의 컨디션, 예상치 못한 기술적 문제들, 컨펌 과정에서의 지연, 예산 조정 등등.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조망하는 태도를 견지하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죠. 실패는 결코 우리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큰 그림을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가 분명해 집니다. 그제서야 진짜 집중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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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대한 ‘겸손한 시선’
반대로 성공이라는 걸 한 번 들여다 볼까요? 그동안 해내왔던 프로젝트들 중 잘 됐다고 생각되는 프로젝트나 캠페인들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보세요. 가슴에 손을 얹고, 온전히 내 노력만으로, 순수한 우리의 노력만으로 빚어낸 성공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또 그 성공 뒤에는 얼마나 많은 시도와 실패들이 숨어 있을까요?
처음 기획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우연히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도 있을 겁니다. 시기상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경우도 많았겠죠. 때로는 경쟁사의 실수 덕분에, 때로는 예상치 못한 외부 이벤트 덕분에 성과가 나기도 했을 거고요.
물론 우리의 노력과 전략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운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타이밍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예측하거나 계획할 수 없었던 요소들이 성공에 기여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성공 사례를 바라 볼 때에도 이런 태도를 견지할 수 있길 바랍니다. 결과를 알고 나서 역으로 짚어 추론하다 보면 괜히 모든 게 필연적이었던 것처럼 착시를 부립니다. 분명한 건 성공이라는 사례의 초기 기획 당시에도 정말 많은 불확실성이 있었을 거예요. 지금 잘되고 있는 방법이 내일도 똑같이 통할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죠.
이런 겸손한 시선과 태도, 자세를 갖추게 되면 성공했을 때 너무 우쭐하지도 않게 되고, 실패했을 때 너무 자책하지도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실패를 디폴트값으로 받아들이기
그래서 어쩌면 실패가 디폴트값일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 새로운 메시지로 고객을 처음 마주할 때. 처음부터 완벽하게 성공할 확률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은 게 당연하죠.
이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집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실패로부터 빨리 배우는 것에 집중하게 되거든요. 빠른 실패, 빠른 학습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거죠.
실패에 의연한 어른이 되는 것,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정말 중요한 태도라고 봅니다. 실패했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무능한 것도 아니에요. 단순히, 그냥 가볍게, 또 다른 하나의 데이터를 얻은 것뿐이라고 생각합시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소중하고도 귀한 나만의 경험.
그렇게 작은 성공들을 차곡차곡 모아가면서 ‘반짝이는 나’, ‘반짝이는 우리’를 만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어떤 거대한 성공보다도, 꾸준히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더 의미 있습니다.

실패는 패배가 아니니까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실패와 패배는 다르다는 건데요.
실패는 ‘과정’입니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예상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실패는 우리에게 새로운 정보를 주고, 다음 시도를 위한 발판이 되어줍니다. 하지만 패배는 ‘포기’입니다. 더 이상 시도하지 않겠다고, 배우려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순간이죠. 그때서야 정말로 끝이 나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의 실패를 패배로 여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실패에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성장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해요. 그렇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잃지 않는 마케터, 경영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실패가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이 말을 꼭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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