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랜드를 너무 소중히 여기는 순간, 오히려 브랜드는 딱딱해집니다. 하인즈는 자기 케첩이 위조되는 걸 보고 화내는 대신 그걸 캠페인으로 만들었고, 듀오링고는 마스코트를 아예 죽여버렸죠. 이 두 브랜드가 공통으로 증명한 건 하나입니다. 장난칠 줄 아는 브랜드가, 더 오래 기억된다는 것.
스레드(Threads)가 처음 나왔을 때, 꽤 흥미롭게 지켜봤던 장면이 하나 있었어요.
브랜드 공식 계정들이 너도나도 스레드에 입성하면서 올린 첫 게시글들이었는데요. “팀장님한테 허락은 안 받았지만 일단 올려봅니다”, “대표님은 제가 계정 판 거 아직 몰라요” 같은 식의 글들이었어요. 브랜드 공식 계정에서 나올 법한 말이 전혀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엄청나게 퍼졌고, 댓글에는 “이 브랜드 너무 귀엽다”는 반응이 쏟아졌죠.
그때는 그냥 웃고 넘겼는데, 나중에 다시 떠올리면서 왜 그게 먹혔는지 생각해보게 됐어요.
브랜드에는 원래 갑옷이 있다
브랜드를 운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브랜드 가이드라인, 톤앤매너 문서, 콘텐츠 리뷰 프로세스. 공들여 쌓은 이미지를 지켜야 하니까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아니,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해요. 브랜드는 일관성 위에서 신뢰가 쌓이거든요. 그런데 그 일관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어느 순간부터 “우리 브랜드는 이런 말 하면 안 돼”, “이건 우리 이미지랑 안 맞아” 하는 식의 자기검열로 이어질 때가 있어요.
결국 콘텐츠는 점점 안전해지고, 반듯해지고, 그리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것들이 됩니다.
사실 이건 규모와 상관없이 생기는 일이에요. 브랜드가 커질수록 지켜야 할 것도 많아지고, 의사결정 단계도 늘어나고, 콘텐츠 하나에 관여하는 사람도 많아지거든요. 그 과정에서 뾰족한 아이디어는 무뎌지고, 재미있는 표현은 “리스크가 있다”는 이유로 삭제됩니다. 결국 게시되는 건 아무도 반대하지 않은 것들이죠. 아무도 반대하지 않은 콘텐츠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콘텐츠이기도 하고요.
갑옷을 벗은 브랜드
하인즈 : 위조를 자랑으로
2023년, 하인즈는 흥미로운 캠페인을 선보입니다. 이름하여 ‘Ketchup Fraud’.
스냅챗에 올라온 한 영상이 발단이었어요. 식당 직원이 하인즈 케첩 병에 다른 브랜드의 더 저렴한 케첩을 몰래 채워 넣는 장면이었죠. “저거 하인즈 아닌데?” 라는 자막과 함께요. 이 영상은 퍼지고 퍼져서 결국 하인즈 본사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보통의 브랜드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 법무팀 먼저 연락하거나, 공식 입장 문서를 준비했겠죠. 하지만 하인즈는 달랐습니다. 화내는 대신, 이걸 캠페인으로 만들어버렸어요.
식당 직원이 하인즈 병에 다른 케첩을 채우는 장면을 그대로 광고로 재현했습니다. 그리고 한 줄을 덧붙였죠.

ⓒHeinz
“진짜 하인즈가 아닐지라도, 하인즈여야만 하니까요.”
뉴욕과 시카고 전역에 옥외광고가 걸렸고, 소비자들에게는 “가짜 하인즈를 쓰는 식당을 인스타그램에 태그해달라”는 이벤트까지 벌였습니다. 심지어 케첩 색상을 즉석에서 감별해주는 인스타그램 필터도 만들었고요.
결과는? 가짜 케첩 사용률 73% 감소, 실제 하인즈 케첩 사용량 24% 증가!
그런데 저는 숫자보다 이 캠페인의 태도가 더 인상적이었어요. 브랜드 이미지를 ‘침해당한’ 상황을 브랜드 파워의 ‘증거’로 뒤집는 발상. 화낼 수도 있었는데, 웃어버린 거잖아요. 그게 가능했던 건 하인즈가 자기 브랜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워낙 유명하니까 사람들이 병을 재활용하는 거 아니겠냐”는 자신감. 갑옷이 필요 없을 만큼 단단한 브랜드는 오히려 갑옷을 벗어도 됩니다.
그리고 이건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었어요. 하인즈는 그 이후로도 이 기조를 계속 이어갑니다. 2024년에는 케첩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려고 식탁에서 민망한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을 담은 프린트 광고를 냈어요. ‘마지막 한 방울’을 위해 체면을 포기하는 사람들. 거기에 한 줄을 붙였죠. “It Has to Be Heinz.”
2025년 초에는 힙합 프로듀서 머스타드(Mustard와 케첩이라니, 꽤 웃겼어요)와 협업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캠페인을 론칭했고, 같은 해에는 전 세계 식당 감자튀김 박스가 하인즈 로고와 같은 모양이라는 사실을 발견해 “Looks Familiar”라는 캠페인으로 만들어버렸어요.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발견들인데, 아무도 그냥 지나치지도 못하는 것들이에요.
하인즈가 이 시리즈 캠페인에 붙인 공식 키워드는 “Irrational Love(비이성적인 사랑)”입니다. 소비자들이 하인즈에 대해 갖고 있는 비합리적인 집착을 브랜드 스스로 인정하고, 오히려 그걸 소재로 삼는 거예요. 브랜드를 지키려는 게 아니라, 소비자의 사랑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방향으로요.
듀오링고 : 협박이 사랑이 되다
듀오링고는 다양한 나라의 언어를 게임처럼 배우는 앱이에요. 특히 “미루지 말고 매일 하세요” 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하는 브랜드죠.

만일 하루가 끝나가는 데 듀오링고를 하지 않았다면.. 부엉이가 이렇게 화를 내요
지금 듀오링고를 떠올리면 뭐가 먼저 떠오르세요? 십중팔구 그 초록색 부엉이 듀오(Duo)일 거예요. “오늘도 수업 안 하면 너네 집 찾아간다”며 협박하는 그 캐릭터요. 이 브랜드는 처음부터 갑옷을 입을 생각이 없었어요. 2024년에는 마스코트인 듀오의 사망을 선언하기까지 합니다.
사망 원인은 단 하나. “너희가 공부를 안 해서.”
팬들은 추모 댓글을 달았고, 이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어요. 그리고 얼마 뒤 듀오는 부활했죠. 브랜드가 마스코트를 죽였다 살렸다 하는데, 소비자들은 화내기는커녕 더 열광했어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보신각 제야의 종 행사 얘기를 한번 해볼게요. 2026년 1월 1일, 수많은 인파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무리가 있었어요. 연두색 부엉이 인형탈 군단이었죠. 뉴스 화면을 보다 저도 “저게 뭐야?” 하고 멈췄던 기억이 나거든요. 새해 첫날, 새로운 다짐을 가슴에 품고 종소리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듀오링고가 불쑥 나타나서 절묘하게 이런 메시지를 심어놓은 거예요. “새해 목표 세웠지? 공부 안 하면 알지?” 초대받지 않은 것 같은데, 아무도 그 장면을 지나치지 못했어요.

ⓒ듀오링고코리아 인스타그램
SNS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된 게시글 댓글창을 보면 어김없이 듀오링고 공식 계정이 등장해서 이런 말을 남기거든요. “그렇지만 듀오링고는 했어?”, “힘들어도 듀오링고는 해야지.” 게시글 내용이 뭐든 상관없이요. 누군가 짝사랑 고백을 했어도, 취업 성공 소식을 올렸어도, 여행 사진을 찍었어도. 듀오링고는 거기서 결국 “공부는 했냐”고 물어봐요. 어이없는데 웃기고, 웃긴데 묘하게 찔리는 그 감각. 그게 듀오링고라는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남기는 인상이에요.
장난도 전략적으로
스레드 초기에 “팀장님한테 허락 못 받았어요”라고 올렸던 브랜드 계정들, 하인즈, 듀오링고. 이 모두가 유쾌하게 보이는 건 자기 브랜드를 몰라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예요.
하인즈는 “위조되는 것 자체가 우리 브랜드 파워의 증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걸 뒤집어쓸 수 있었어요. 듀오링고는 “학습이라는 본질은 지키되, 그 외의 모든 건 놀 수 있다”는 선이 분명했기 때문에 협박 캐릭터가 브랜드를 해치지 않은 거고요. 스레드 브랜드 계정들도 마찬가지예요. 그 게시글 하나로 브랜드가 망하지 않은 건, 이미 소비자 인식이 충분히 쌓여있었기 때문이에요. 쌓인 게 없는데 장난부터 치면, 그냥 가벼운 브랜드로 읽히거든요.
장난을 칠 수 있는 여유는, 자기 브랜드를 충분히 알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거예요.
지금의 브랜드, 너무 긴장하고 있지는 않나요?
지금 소비자들이 피드를 스크롤하는 속도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완벽하게 다듬어진 브랜드 콘텐츠는 그냥 지나쳐요. 예쁜 건 너무 많거든요. 반면 “어, 이 브랜드 왜 이래?” 싶은 순간에는 손가락이 멈추죠.
브랜드가 조금 허술해 보이는 순간, 조금 인간적으로 보이는 순간, 오히려 거기서 친근함이 생겨요. 계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게 가장 정교한 전략이 되는 시대니까요.
물론 모든 브랜드가 하인즈처럼, 듀오링고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업종도 다르고, 쌓아온 이미지도 다르니까요. 하지만 “우리 브랜드는 이런 말 하면 안 돼”라는 금기의 목록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면,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지금 브랜드를 지키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가두고 있는 걸까요?
브랜드의 목소리를 어디까지 열어둘 수 있는지, 어떤 장난은 브랜드를 살리고 어떤 장난은 브랜드를 흔드는지. 그 경계를 아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최대한 인간적으로 말하는 것. 그게 지금 마케팅이 고민해야 할 진짜 질문인 것 같아요.
브랜드가 어떤 말을 할 수 있는지 함께 들여다보고 싶다면, 그 고민의 시작을 같이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written by 마케터 박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