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길은 어떻게 전한길이 되었나?

📌 INDEX

2024년 12월, 국가적인 큰 사건 이후로 한 인물이 유튜브와 언론에 자주 얼굴을 비춥니다. 바로 전한길씨인데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학원가에서 유명 1타 강사였던 그는 이제, 특정 정치 세력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마케터로서 이 인물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현재의 모습까지 브랜딩되어 왔는지, 그 매커니즘이 궁금해졌죠. 정치적 견해는 배제합니다. 그저 한 사람의 브랜드가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사람과 이슈를 몰고 다니는지 그 과정에 대한 이해를 풀어 공유합니다.

전한길이라는 브랜드

브랜드에 성공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는 조건을 저는 고유명사가 ‘보통명사’처럼 작동하기 시작할 때라고 봅니다.

전한길씨가 그렇죠.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제 ‘전한길’이라는 세 글자만 들어도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 어떤 느낌, 어떤 정서가 함께 떠오릅니다.

저는 이런 게 떠오르네요. ‘격앙된 말투, 시원시원한 표현, 욕을 섞어가며 호통치는 모습.’ 누군가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누군가는 거부감을 느낄 겁니다. 그런데 어느 쪽이든 떠올리는 외형과 인상은 아마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고유명사에서 보통명사, 그러니까 이미 어느 정도 성공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는 걸 방증하는 거죠.

이렇게 네이밍 하나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비슷한 형상이 그려지는 것. 어쩌면 브랜딩과 마케팅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지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미 그 지점에 도달한 전한길씨의 브랜딩 매커니즘을 4가지로 정리해봤습니다.

정리하고 보니 나름 업계에서 이야기하는 정석적인 공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전한길 브랜딩 매커니즘 4가지

1. 26년 동안, 한결 같은 일관성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일관성입니다.

26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거의 같은 캐릭터였습니다. 적극적인(?) 말투, 스며 있는 분노, 그렇게 오래 이어져 온 페르소나.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향해 쏟아내던 그 톤이, 지금 유튜브에서도 그대로 흐릅니다. 가르치는 주제는 한국사에서 정치로 바뀌었는데, 표현하는 결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사실상 더 격양된 듯)

인간은 메시지(텍스트)보다 톤과 무드, 정서(이미지)를 더 오래 기억합니다. 한국사를 배웠던 그 시절의 정서가, 지금 그가 말하는 정치적 발언에도 그대로 묻어 있으니, 옛 수강생들은 그를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입니다. 내용이 바뀌었는데도 사람이 바뀌지 않았다고 느끼기 충분합니다.

브랜드에서 일관성이라는 단어가 왜 그렇게 중요하게 다뤄지는지, 이 전한길씨의 사례를 보면 새삼 분명해집니다. 표현이 일관되면 사람도, 브랜드도 같은 존재로 인식됩니다. 그리고 같은 존재로 인식되어야 비로소 신뢰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 관련 글 : 브랜드 진정성에 대한 소소한 의견

2. 권위의 배경, 서사

이어서 볼 요인은 권위의 출처입니다. 바로 ‘서사’인데요.

그는 학위나 학연, 지연으로 권위를 세운 사람이 아닙니다. 사학 석사 과정을 마쳤지만 학위는 끝내 받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의 약점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자산이 됐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자라 1타 강사가 된 사람. 이 서사 자체가 어떤 학위보다도 강력한 권위를 만들었습니다.

학위는 의심받기 쉽습니다. 그런데 인생은 의심받기 어렵습니다. 같은 출신,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에게 그는 “나도 너희와 같은 데서 출발했다”는 메시지를 많은 강의를 통해 깔아두었습니다. 그 진정성에 학생들은 마음을 열었고, 그 열림이 곧 신뢰로 연결됐습니다. 동질감에 연결된 친구들도 적지 않겠죠.

흔히 번듯한 학교 졸업장이나 경력, 이력이 부족하다고 위축되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라면 바로 이 지점을 꼭 기억하길 바랍니다. 사람들이 학력보다 그 사람(브랜드)이 그 지점까지 어떻게 성장해 왔는가에 끌리기 마련이라고. 자격은 입구를 열어주지만, 사람을 끌어당기는 건 결국 이야기입니다.

3. 내 속을 대신 말해주는 사람

이건 가장 미묘하고도 강력한 메커니즘이라고 보는데요.

그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자주 하는 말이 ‘속이 시원하다’입니다. 시험 제도의 부조리함, 출제자의 무책임함, 공시생들의 답답함 같은 것들을 그는 학생들 대신 큰 소리로 욕해 줬습니다. 학생들이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던 분노를 그가 무대 위에서 대신 발산해 주었던 거죠.

사람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이겁니다. 내 속을 대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감각. 동의가 아니라 대변받는 감각. 한 번 그 감각을 느끼면 자연스레 그 사람의 다른 말도 잘 듣게 됩니다. 내 편이라는 인식이 먼저 자리 잡혔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 정치 영역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가 무슨 주장을 하느냐보다, 누군가가 답답해하던 마음을 누군가가 큰 소리로 대신 외쳐준다는 그 구조 자체가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다고 봅니다. 강의실에서 작동했던 메커니즘이 다른 무대로, 더 큰 무대로 옮겨졌을 뿐 사실상 본질은 같죠.

4. 진정성처럼 보이는 솔직함

마지막이자 가장 조심스러운 이야기입니다.

꾸밈이 없습니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기본이고, 욕도 섞고, 표정도 숨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솔직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솔직함이 어느 순간 옳음으로 번역됐죠. 꾸미지 않았으니 진실해 보였고, 진실해 보였으니까 맞는 말 같았고, 맞는 말 같았으니 믿어도 될 것 같은. 이 연쇄 반응이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난 겁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솔직함과 옳음은 같은 개념이 아니라는 것. 어떤 사람은 솔직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꾸며낸 말이지만 그 말이 이치에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옳음과 다름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브랜드 관점에서 보면 꽤 의미가 있는 지점입니다. 마케팅을 펼치면서 ‘진정성’을 드러내겠다고 일부러 결을 거칠게 만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진정성이 늘 옳음이나 긍정을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표현의 결과 내용의 결은 별개의 문제니까요. 그러니까, 겉모습(솔직하든, 거칠든)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무엇이 그를 더 증폭시켰나?

위 4가지를 갖춘 사람이 전한길씨 한 사람뿐일까요? 아니겠죠. 비슷한 자질을 가진 강사나 정치인, 유튜버는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많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전한길이라는 사람이 그 자리에 독보적으로 올라 선 걸까요?

한 사람이 일종의 브랜드(러브마크)로 우뚝 서는 데는 그 사람의 조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반드시 외부 조건들과의 융합이 필요하죠. 쉬운 이해를 위해 전한길씨를 작은 불꽃에 비유하겠습니다.

작은 불꽃은 먼저 유튜브라는 공기를 만났습니다. 강의실은 닫힌 공간이고 수강생은 한정되어 있죠. 그런데 유튜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알고리즘은 감정이 강한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퍼뜨립니다. 그가 강의실에서 쏟아내던 그 분노의 톤이 유튜브에 옮겨지자, 같은 톤이 수십 배 더 멀리, 더 빠르게 닿게 됐습니다. 매체가 그를 증폭시킨 거죠.

그리고 정치라는 기름이 끼얹어집니다. 한국사라는 주제는 분열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치는 다릅니다. 정치는 사람들을 한쪽 편으로 끌어당기고, 그 편 안에서 강한 결속을 만듭니다. 전한길씨가 정치적 발언을 시작한 순간 오디언스는 학생에서 지지자로 탈바꿈됩니다. 학생은 강의가 끝나면 떠나지만, 지지자는 쉽게 떠나지 않게 되죠.

마지막으로 믿음이라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불안한 현대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어딘가에 기댈 곳을 찾습니다. 제도에 대한 불신, 언론에 대한 피로, 정치에 대한 환멸. 그 자리에 빈 공간이 생기면 사람들은 누군가를 그 자리에 앉히고 싶어집니다. 바로, 내 마음과 같은 사람,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스피커. 그 빈자리가 없었다면, 그가 아무리 강한 메시지를 던져도 이 정도까지 번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결국 전한길씨의 현재 브랜드는 다른 브랜드들이 그랬듯, 그 한 사람만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작은 불꽃이 공기와 기름과 바람을 만나 비로소 큰 불이 된 결과죠.

그래서 이 현상은 한 사람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우리라는 사람들을 에워싸고 있는 전체적인 배경 상황의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봐야 하죠.

마치 ‘종교’처럼

자. 다시 정리하자면, 일관된 톤이 신뢰를 만들고, 인생 서사가 권위를 만들고, 대변받는 감각이 소속감을 만들고, 솔직함이 옳음의 감각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매체, 시대와 빈자리까지 더해지면,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말을 정보 그 이상으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사실상 종교의 영역으로 넘어 가는 겁니다.

종교의 구조를 들여다 볼까요? 흔들리지 않는 교리(일관된 메시지), 권위 있는 사제(서사를 가진 전달자), 같은 마음을 공유하는 신도(대변받는 감각의 공동체), 그리고 반복되는 의식(라이브 방송과 집회). 거기에 한 가지가 더해지면 종교가 완성됩니다. 바로 ‘공유된 믿음‘.

어쩌면 이 모든 게 지금 전한길씨를 둘러싼 현상들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더 이상 그의 말에 동의해서 따르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미 믿고 있기에 계속 믿는 것에 가까워 보입니다. 무엇을 말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가 말하기 때문에 그 말이 옳다고 여기는 단계로 넘어간 거죠.

모든 브랜드가 도달하고 싶어 하는 자리이기도 할 겁니다. 애플의 사용자들이 그렇고, 파타고니아의 고객들이 그렇고, 어느 분야든 가장 강한 브랜드는 결국 종교적 충성도를 만들어 냅니다. 사람들은 제품을 사는 게 아니라 그 브랜드가 믿는 세계관에 가입합니다. 가장 파워풀한 형태의 브랜드 자산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브랜드로써의 ‘책임’

이 지점에서 이 얘길 꼭 드리고 싶네요.

종교적 자리는 가장 강력한 만큼 가장 무겁습니다. A라는 존재를 믿어버리는 순간, A의 말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신념의 재료가 됩니다. 그러니 브랜드와 마케팅 관점에서 무엇을 믿게 만들 것인가는, 무엇을 팔 것인가보다 훨씬 무거운 질문이 되는 거죠.

브랜드가 사람들의 신뢰를 모았다면, 그 신뢰는 자산이기 이전에 책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높이 올라간 브랜드일수록, 자신들의 뿌리가 어디를 향해 내려 있는지, 가지가 어느 쪽으로 뻗고 있는지, 주변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더 자주 살펴야 합니다.

결론 : 나는 무엇을 믿는 사람인가?

전한길이라는 사람으로 시작한 글이지만, 굳이 전한길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순전히 한 사람이 어떻게 브랜드라는 현상으로 발전됐고, 그 메커니즘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가 중요한 글이니까요.

#신념 #말 #행동 그리고 #책임

핵심은 무엇을 믿느냐, 그래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 나아가 그렇게 쌓은 신뢰에 대한 책임은 또 어떻게 질 것이냐 로 정리됩니다. 사이먼 시넥이 설파한 골든 서클과 결이 비슷합니다. WHY에서 출발해서 HOW로 이야기하고, WHAT을 제시하는.

그래서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이라면 이 두 가지 질문을 꼭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쉽게 정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 앞에 가끔 멈춰 서야 합니다. 그 습관 자체가 지역과 사회에 유의미한 브랜드로 성장하는 거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제가 함께해 온 브랜드들이 그랬고, 앞으로 만날 브랜드들이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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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브랜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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