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오래 문상훈을 알고 있었지만,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코미디 유튜버가 영화를 수입한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해서 빠더너스 채널을 찾아갔죠. 필름 마켓에 가는 영상을 보다가 어느새 구독 버튼을 눌렀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앞에 두고 눈을 반짝이는 사람의 모습은, 생각보다 빠르게 신뢰를 만들더라고요. 그리고 문득 깨달았어요.
내가 사랑하는 브랜드들도 모두 그렇게 신뢰가 먼저였다는 걸.
직접 칸에 가서 영화를 사오자!
2025년,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 팀이 칸 영화제 필름 마켓에 갔습니다. 코미디 콘텐츠로 유튜브 구독자 수백만 명을 모은 크루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제 마켓에 바이어로 등장한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한 편의 영화를 골랐습니다. 캐나다의 무명 코미디 영화, 《너바나 더 밴드》. 로튼토마토 신선도 98%, SXSW와 토론토국제영화제 미드나잇 부문 관객상을 받은 작품이었지만, 국내에선 아무도 모르는 영화였죠.

영화 ‘너바나더밴드’ 포스터(@그린나래미디어)
문상훈은 이 영화를 직접 수입했습니다. 번역은 타블로와 하루가 맡았고요. 이 조합 자체가 이미 화제였어요. 래퍼이자 작사가인 타블로가 영화 번역에 참여한다는 것, 그것도 코미디 유튜버가 수입해온 캐나다 영화를! 업계 관행으로 보면 전혀 말이 안 되는 그림이었습니다.
근데 이 소식이 알려지자 반응은 뜨거웠어요. 놀랍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더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 문상훈이면 할 수 있지.”
이 반응이 왜 나왔는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사실 그가 판 건 영화가 아니었다
문상훈이 영화 한 편을 수입했다는 건 사실이에요. 근데 사람들이 반응한 건 영화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반응한 건 ‘안목’이었어요.

빠더너스 팀은 영화 수입을 결정하기 전부터 그 과정을 콘텐츠로 만들었습니다. 칸에 가는 것, 필름 마켓을 돌아다니는 것, LA와 홍콩을 거치며 일 년여에 걸쳐 영화를 찾아다니는 것. 결과물이 나오기 훨씬 전에 이미 팬들은 그 여정을 함께하고 있었죠.
그러니까 개봉 소식이 나왔을 때 사람들에게 이건 낯선 영화의 등장이 아니었어요. 내가 믿는 사람이 몇 년을 발품 팔아 골라온 것이었던 거죠.
바로 이 부분이 핵심입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보여줬고, 그 과정이 신뢰를 만들었어요. 신뢰가 쌓인 다음에는, 카테고리가 무의미해졌고요.
생각해보면 이건 마케팅 교과서에 없는 방식이에요. 제품 출시 전 티저 캠페인을 하는 것과는 결이 달라요. 티저는 기대감을 만들지만, 빠더너스가 한 건 신뢰를 쌓은 거예요. 기대감은 결과물이 나오면 소비되지만, 신뢰는 다음번에도 남거든요.

영화를 찾는 과정이 담긴 빠더너스 유튜브 채널 재생목록
여기서 포인트는 ‘콘텐츠로 만들었다’는 거예요. 칸 영화제에 가는 장면, 낯선 필름 마켓에서 어리바리하게 영화를 고르는 장면, 출장이 아니라 여행처럼 그 과정을 즐기는 모습들. 그게 유튜브에 차곡차곡 쌓였고, 팬들은 그 여정의 목격자가 됐어요. 단순히 ‘문상훈이 영화를 골랐다’는 결론만 들었을 때와,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본 것과는 전혀 다른 무게감이 생기죠. 전자는 정보지만, 후자는 경험이거든요.
신뢰가 있으면 카테고리는 상관 없다
한 번 생각해보면 이 조합, 말이 안 되긴 해요.
코미디 유튜버가 영화 수입자가 되고, 래퍼가 번역가가 되고, 유튜브 채널이 배급 창구가 됩니다. 업계 관행으로 보면 전부 월권이에요.
그런데 작동했습니다. 왜일까요?
문상훈과 타블로, 빠더너스라는 이름에는 각자의 팬덤이 있어요. 그리고 그 팬덤의 바탕은 단순한 인기가 아니라 ‘이 사람의 취향은 믿을 수 있다’는 신뢰입니다. 문상훈이 재밌다고 하면 재밌는 거고, 타블로가 번역했으면 뉘앙스가 살아있는 거예요.
그 신뢰가 카테고리의 벽을 녹인 거죠.
브랜드 확장을 이야기할 때 오랫동안 통용되던 공식이 있었어요. 제품군이 인접해야 하고, 브랜드 이미지가 충돌하지 않아야 하고, 새로운 영역에서의 역량을 먼저 증명해야 한다는 것. 근데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그 공식이 빠르게 힘을 잃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역량을 먼저 증명하지 않아도 돼요. 신뢰가 먼저 있으면, 역량은 나중에 검증됩니다.
비슷한 흐름이 다른 데서도 보여요. 무신사는 원래 스케이트보드·스트릿 패션을 이야기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였어요. 패션 커머스 플랫폼이 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요. 근데 그 커뮤니티 안에서 쌓인 신뢰, ‘무신사가 소개하면 괜찮은 거다’라는 감각이 커머스로 확장하는 발판이 됐어요. 카테고리가 바뀐 게 아니라, 신뢰가 카테고리를 만든 거죠.
이건 크리에이터 업계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브랜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꽤 불편한 질문이 하나 생기거든요. 우리는 지금 역량을 보여주고 있나, 아니면 신뢰를 쌓고 있나.

변화 중인 브랜드 확장의 문법
저는 이 사건이 단순한 화젯거리가 아니라, 브랜드를 운영하는 모든 사람이 한 번쯤 질문해봐야 할 신호라고 생각해요.
우리 브랜드는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예전 식 답은 이랬어요. ‘우리 카테고리 안에서, 우리 역량이 닿는 범위에서.’ 근데 지금 답은 달라요. ‘우리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따라와 줄 수 있는 곳까지.’
두 가지 답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전자는 제품 중심이고, 후자는 관계 중심입니다.
문상훈이 영화 수입에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영화 산업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자신을 믿는 사람들이 충분히 있었고, 그 사람들에게 “내가 직접 고른 것”이라는 말 한마디가 이미 마케팅이 됐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브랜드가 주목할 포인트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과물만 내놓는 브랜드와, 왜 이걸 만들었는지 어떻게 고민했는지를 보여주는 브랜드는 결이 달라요. 전자는 제품을 파는 거고, 후자는 철학을 파는 겁니다. 브랜드의 철학을 산 사람은 다음번에도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카테고리가 달라져도요. 요즘 소비자들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게 그 차이를 감지하거든요.
다른 하나는 신뢰는 축적된다는 것이에요. 신뢰는 한 번의 캠페인으로 만들어지지 않아요. 문상훈이 그저 웃기기만 한 배우가 아니라는 사실과 빠더너스가 수년간 영화를 찾는 과정을 콘텐츠로 차곡차곡 쌓아온 것처럼, 브랜드도 일관된 관점과 태도를 오래 보여줘야 합니다. 그 축적이 나중에 전혀 다른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는 발판이 되거든요. 단기 성과에 집중하느라 이 축적을 놓치는 브랜드가 생각보다 많아요.
결국 브랜드 확장의 조건은 카테고리가 아니라 신뢰예요. 그리고 그 신뢰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아요. 오늘 우리가 어떤 태도로 브랜드를 운영하느냐가, 내일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거죠.

칸 영화제에 가는 중인 문상훈(@빠더너스 유튜브)
다음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시사회에서 문상훈은 이런 말을 했어요. “맛집에 친구를 데려가서 그가 맛있게 먹는지 계속 지켜보게 되는 기분이에요.” 이 비유가 너무 정확해요.
그는 스스로를 맛집 사장이 아니라 ‘맛집을 아는 사람’으로 포지셔닝한 거예요. 그리고 그 안목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번엔 영화야”라고 말한 거고요.
저는 이번 콘텐츠를 보면서 구독자가 됐고, 영화가 개봉하면 보러 갈 것 같아요. 그리고 그의 다음 행보가 뭐가 됐든, 아마 또 따라가게 될 것 같습니다. 그게 음악이든, 책이든, 전혀 예상 못 한 무언가든. 제가 믿게 된 건 문상훈의 ‘코미디’가 아니라 문상훈의 ‘안목’이니까요.
어쩌면 이게 브랜드 확장의 답일지도 모르겠어요.
카테고리를 넘는 건 역량의 문제가 아니에요. 신뢰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신뢰는, 오랫동안 일관된 태도로 과정을 보여온 브랜드에게만 쌓이죠.
문상훈의 다음이 무엇이든, 그건 지금 그가 얼마나 신뢰를 쌓아왔느냐의 결과일 거예요. 여러분 브랜드의 다음도 마찬가지고요.
written by 마케터 박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