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 시장 전체가 역주행하는 사이, 민음사만 홀로 영업이익 72%를 끌어올렸습니다. 한강 작가의 책 한 권 없이. 비결을 묻는 말에 대표는 이렇게 답했죠. “카탈로그 전체의 힘이 작동한 결과”라고. 그런데 저는 거기서 한 발 더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라는 질문으로요.
서버가 터졌다고?
고백하자면, 저는 브랜코스 사무실에서 가장 책을 덜 읽는 사람이에요. 우리 팀 사람들은 모두 다독왕이거든요. 어느 날 들여다보면 다들 뭔가를 읽고 있고, 책 얘기가 자연스럽게 회의 중간에도 튀어나오는 그런 분위기예요. 저는 책보다 트렌드를 먼저 읽는 타입이랄까요.
그런 제가 지난 4월 23일, 민음사 16기 북클럽 신규 모집 소식을 접했습니다. 민음사의 연회비 5만 원짜리 유료 독서 멤버십이었죠. 사실 책보다는 텍스트힙 트렌드에 이끌렸어요. 업무를 하다가 오후에 잠깐 시간이 났을 때 들어가서 신청 버튼을 눌렀죠. 그런데 이미 마감됐다는 문구가 뜨는 거예요.

캡처로 남겨둔 그날의 상황
황당해서 찾아보니, 오전 10시 오픈과 동시에 1시간 만에 동시접속자 1만 명이 몰리며 서버가 다운됐더라고요. 애초 2만 명이던 모집 인원을 2만 5,000명으로 급히 늘렸지만, 그것도 당일 마감. 그 때 민음사가 이렇게 핫한가 싶었습니다.
출판업계가 매년 “역대 최악의 불황”을 토로하는 시장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일이었습니다.
숫자는 더 선명해요.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표한 2025 출판시장 통계를 보면, 72개 출판기업의 총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3.4% 감소했습니다. 문학동네는 영업이익이 44.4%, 창비는 37.4% 줄었어요. 두 회사 모두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특수가 사라진 여파죠. 4대 서점의 매출도 3.1% 감소했고, 성인 독서율은 38.5%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국민 10명 중 책을 1년에 한 권이라도 읽는 사람이 4명도 채 안 된다는 뜻이에요.
그 사이 민음사는 매출 23.8%, 영업이익 72.7% 성장.
같은 시장, 같은 시간입니다. 그러니 ‘미스터리’라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한 거죠.
‘화석’이라 불린 출판사
업계에서 민음사를 두고 오래전부터 하는 말이 있어요. “출판계의 화석.” 1966년 창립 이후 60년 가까이, 세계문학전집을 중심으로 고전과 인문을 묵묵히 펴내온 출판사라는 뜻이죠. 트렌드를 좇기보다 자기 자리를 지켜온 곳. 딱히 마케팅을 화려하게 하는 것도, 공격적으로 베스트셀러를 노리는 것도 아닌 곳이라는 이미지였어요.

그런데 세계문학전집 창간 당시 편집위원들이 남긴 말이 있습니다.
“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 오늘의 젊은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오늘의 번역이 필요하다.”
1998년에 쓰인 문장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게 단순한 번역 방침이 아니라, 민음사라는 브랜드가 지금까지 일관되게 말하고 싶었던 것과 정확히 연결된다고 봐요.

그리고 그 사랑을 매 세대에게, 가장 좋은 방식으로 건네겠다는 것. ‘화석’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오래된 출판사가 사실 이 한 문장을 가장 오래, 가장 일관되게 지켜온 곳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민음사는 단행본 신간 한두 권에 매출을 의존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세계문학전집이라는 방대한 스테디셀러 라인업이 기반을 받쳐주고, 그 위에서 젊은 편집자들이 새로운 기획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죠.
박근섭 대표는 이렇게 말했어요. “중요한 건 ‘젊다’는 것 자체보다, 새로운 감각을 기획으로 구현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 말 그대로, 민음사는 단기 성과보다 브랜드의 결을 오래 가져가는 쪽을 선택해왔어요.
유튜브는 적이 아니라 통로였다
보통 많은 판매를 위해서는 광고를 시작하죠. 민음사가 택한 방법은 의외였어요. 텍스트를 지키겠다는 출판사가 유튜브를 시작한 거니까요. 2019년, 자사의 콘텐츠가 업로드 될 ‘민음사TV’가 문을 열었습니다.

(=유튜브 민음사TV 채널)
처음엔 편집자가 카메라 앞에 앉아 책 소개를 하는 것부터였어요. ‘알베르 카뮈 10분 만에 알려드림’ 같은 콘텐츠, 세계문학전집을 토너먼트 형식으로 소개하는 ‘세문전 월드컵’, 편집자의 하루를 담은 브이로그까지. 지금은 구독자 43만 명. 출판사 유튜브 채널 중 독보적인 숫자입니다.
무엇이 이 채널을 키웠을까요?
콘텐츠 전략을 이끈 마케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실체 없는 로고가 아니라 사람이 나오니까 팬심 좀 부려도 되겠다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김민경 편집자는 이렇게 말했어요. “유튜브에서 책을 소개하는 건 ‘이 책 사세요’가 아니라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겁니다. 아무 책이나 잡아보세요’에 가까워요.”
저는 이 두 문장에 민음사 콘텐츠 전략의 핵심이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팔려고 만든 콘텐츠가 아니라는 거죠. 브랜드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을 찾은 것. 그게 마침 유튜브였던 거예요. 텍스트의 공공의 적이라고 여겼던 영상 콘텐츠와 공생하는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죠.
실제로 한 독자는 이런 댓글을 남겼어요. “책은 좋아했는데 읽는 건 게을렀어요. 이 채널 덕분에 다시 읽게 됐어요.” 구매 전환이 목적이었다면 절대 나오기 어려운 반응이에요.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먼저 생기고, 그게 자연스럽게 책으로 이어진 거거든요.
편집자들이 스타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김민경 편집자는 각종 미디어에 패널로 출연하고, 넷플릭스와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까지 진출했습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서는 독자들이 생겼어요. 출판사 직원이 팬덤을 가진 ‘북플루언서’가 된 거죠. 그런데 이 현상이 단순히 개인의 매력에서 비롯된 게 아니에요. 그 뒤에 민음사라는 브랜드가 일관되게 쌓아온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채널이 달라도 메시지는 하나
물론 민음사의 콘텐츠는 유튜브 하나가 아닙니다. 민음사가 만들어온 접점들을 나열해볼게요.
- 유튜브 ‘민음사TV’
: 편집자들의 책 이야기, 브이로그, 세문전 월드컵 - 민음북클럽
: 연회비 기반 유료 독서 멤버십, 누적 회원 11만 명 - 한편, 탐구, 땅 시리즈
: 논문보다 가벼운 인문잡지와 비소설 기획들 - 서울국제도서전 이벤트
: 번호표를 뽑고 줄을 서야 살 수 있는 굿즈와 현장 행사
포맷은 다 다릅니다. 그런데 각각의 접점에서 독자가 받는 인상은 하나예요.

민음사가 전하고자 했던 일관된 메시지가 팬덤을 만들어요. 유튜브를 보다 북클럽에 가입하고, 도서전에 가서 굿즈를 집어들고, 세계문학전집 한 권을 더 사는 흐름. 우연이 아닙니다. 민음사라는 브랜드가 오랫동안 같은 말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해온 결과예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불교힙’ 열풍 속에 역주행한 것도 이 맥락이에요. 출간된 지 수십 년 된 책이 다시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민음사TV에서 편집자들이 그 책을 재미있게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를 믿는 독자들이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콘텐츠가 축적되어 만들어낸 신뢰가 판매로 이어진 거죠.

브랜드가 말하는 것, 그리고 증명하는 것
브랜드가 “우리는 이런 회사입니다”라고 말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그걸 모든 접점에서 일관되게,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건 훨씬 어렵죠. 대부분의 브랜드가 말은 하지만 증명하지 못하거든요.
민음사는 60년 된 철학을 유튜브 콘텐츠로, 북클럽으로, 도서전 현장으로 계속 증명해왔습니다. 채널마다 형식은 달라도, 그 안에 흐르는 메시지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메시지는 1998년 세계문학전집 창간 당시부터 지금까지 달라진 게 없어요.
세대마다 새롭게, 그러나 같은 마음으로.
그게 팬덤이 된 거고, 그 팬덤이 이번 북클럽 신청 페이지의 서버를 터뜨린 겁니다.
어떤 브랜드든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그리고 그걸 어떤 콘텐츠로, 얼마나 오래, 일관되게 증명하고 있는가. 민음사가 보여준 건 그 두 질문에 흔들리지 않고 답해온 결과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많은 브랜드가 콘텐츠를 으레 ‘해야 할 일’ 목록 정도로 접근합니다. 유튜브도 해야 하고, 인스타그램도 해야 하고, 뉴스레터도 해야 하는 것들. 안하면 뒤쳐지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채널은 많은데 어디서도 같은 인상을 받기 어려워요. 민음사가 다른 건, 채널을 먼저 고른 게 아니라 말하고 싶은 것을 먼저 알고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러니까 유튜브도, 북클럽도, 도서전도 전부 같은 목소리로 말할 수 있었던 거고요.
결국 콘텐츠는 포맷의 문제가 아닙니다. 브랜드가 무엇을 말할지 알고 있느냐의 문제예요.
브랜코스도 늘 이 지점을 고민합니다. 어떻게 하면 브랜드의 메시지를 일관되게, 다양한 콘텐츠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을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아요. 혼자, 또는 브랜드 안에서만 고민하다 보면 어느 순간 방향을 잃기도 하거든요.
그럴 때 한 번쯤 외부의 시선으로 함께 이야기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그 이야기 상대가 되어드릴 수 있고요.
유행은 왔다 가지만, 쌓인 콘텐츠는 남으니까요.
written by 마케터 박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