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메시지는 어떻게 돈이 되는가? (킷캣 사례)

📌 INDEX

요즘 우리들, AI를 하루종일 달고 살죠? 보고서를 정리해 달라고, 메일 초안을 잡아 달라고, 막힌 코드를 봐 달라고. AI는 이제 손에 익은 작지만 큰 일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한 초콜릿 브랜드가 그 익숙한 모습 위에 묘한 문장 하나를 슬쩍 얹습니다.

AI도 한숨 돌리라고 하면, 더 정확해진다.

어그로 끌려는 말장난이 아닙니다. 근거가 있는 말입니다. 구글 딥마인드 연구진은 “심호흡을 하고, 이 문제를 단계별로 풀어보라”는 한 줄을 질문 앞에 붙였더니, 실제로 언어 모델의 정확도가 34%에서 80.2%까지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킷캣은 여기에 자기 슬로건을 슬쩍 끼워 넣은거죠. ‘Have a break, and then…’ 잠깐 쉬고, 그다음에. 그러자 AI는 정말로 더 정확해졌습니다. 재미 있는 건, 이 카피가 최근에 만들어진 새로운 메시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무려 1957년에 만들어진,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메시지였죠.

마케팅은 늘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

브랜드를 운영하다 보면, 마케팅 담당자들이라면 공통적으로 자주 느끼는 압박이 있습니다. 늘, 언제나, 뭔가 새로운 걸 해야 할 것 같은 무언의 감각입니다.

작년 캠페인은 벌써 낡아 보이고, 경쟁사는 매달 새 캠페인을 꺼내 들고, 트렌드는 무슨 시간 단위로 달라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많은 브랜드가 시즌마다 새 메시지를, 새 톤을, 새 콘셉트를 찾아 헤맵니다. 마치 새로움 그 자체가 브랜드의 생명력인 것처럼.

정말 그럴까요? 여기, 70년 동안이나 브랜드 메시지를 계속 유지해 가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서두에 소개해 드린, 집 근처 편의점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초콜릿 브랜드 ‘킷캣'(KitKat)입니다.

70년간 ‘break’ 딱 하나만

킷캣의 슬로건은 ‘Have a break, have a KitKat(잠시 쉬어가세요, 킷캣과 함께)‘입니다. 1957년, 오랜 파트너 광고대행사 JWT 런던의 카피라이터 도널드 길리스가 만들었죠. 그가 붙든 건 거창한 비전이 아니라, 제품 안에 이미 들어 있던 단순한 사실 하나였습니다.

출처 : 킷캣 홈페이지 히스토리

킷캣은 부러집니다(break). 그리고 사람에겐 잠깐의 휴식(break)이 필요하죠. 이 두 개의 ‘break’를 한 문장에 묶은 순간, 슬로건은 그저 카피가 아니라 제품의 생김새 그 자체가 됐습니다.

뿌리는 더 깊습니다. 1935년 영국에서 태어난 킷캣은 2차 세계대전 중 군인들에게 보급되며 퍼졌습니다. 고된 하루 속에서 이 달콤한 한 조각을 먹는 그 순간만이라도 쉬어가길 바라는 마음. 전쟁이 끝난 뒤에도 킷캣은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삼았고, 그렇게 1957년의 한 문장이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짚고 가야 합니다. 이 메시지는 왜 못 바꿨을까요. 바꾸기 싫어서가 아닙니다. 바꿀 수 없을 만큼, 제품의 물리적 진실과 정서적 약속이 한 단어로 단단히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꾸지 않았기에, 시대마다 다시 쓸 수 있었다

흔히 일관성을 ‘똑같은 걸 계속 반복하는 일’로 오해합니다. 그런데 킷캣을 보면 일관성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걸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의 근원을 흔들지 않았기에, 오히려 시대마다 가장 새로운 소재로 그 메시지를 다시 꺼내 들 수 있었습니다. 70년간 100편이 훌쩍 넘는 캠페인이 진행됐지만, 결국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죠.

“잠깐 쉬어가라.”

자, 이게 캠페인에 어떻게 녹여졌는지 시간 순으로 살펴볼게요.

1950~60s

영국 공장 노동자들의 ’11시 티타임(Elevenses)’ 문화에 올라탑니다. 한가로이 입질을 기다리는 낚시꾼 편처럼, 일하다 멈추는 순간에 킷캣을 놓았죠.

1970~80s

부러질 때 나는 ‘스냅(snap)’ 소리의 리듬을 살리고, 천사와 악마가 사무실 로비에서 나란히 쉬는 ‘Heaven & Hell‘로 위트를 더합니다.

1989

사진가가 잠깐 쉬는 사이, 판다가 롤러스케이트를 탑니다.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광고로 꼽히며 2000년 채널4 ‘역대 광고 100선’ 30위에 올랐죠.

2013

암스테르담에 ‘Wi-Fi 없는 벤치‘를 놓습니다. 반경 5m 안에선 인터넷이 끊기는 벤치. 연결에서 잠깐 벗어나라는 메시지였어요.

출처 : 킷캣 홈페이지 히스토리

2023

광고 제작 전 과정을 AI에게 맡기고 말합니다. “AI가 만들어준 덕분에, 우리가 쉴 수 있었다.”

2024

‘Have AI Break’. 이제 AI도 쉬어야 더 잘한다고, 딥마인드 연구를 자기 실험으로 재현하며 말합니다.

2025

‘Phone Break’. 스마트폰을 잠깐 내려놓는 게 진짜 휴식이라 건넵니다. 옥외·인쇄·디지털을 아우른 360도 캠페인으로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킷캣은 이 브랜드 메시지 한 줄을 지켜내기 위해 소송도 불사했습니다. 1995년부터 약 10년간, 경쟁사 마스(Mars)와 법정 다툼까지 벌이며 ‘Have a break’라는 평범한 두 단어를 내 상표로 지키고자 했죠. 누구나 쓰는 일상어를 두고 두 기업이 10년을 싸운 겁니다. 그렇게 이 메시지는 단순한 한 줄 카피를 넘어 킷캣이라는 브랜드 그 얼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죠.

소재는 매번 가장 동시대적이었습니다. 티타임에서 판다로, Wi-Fi 벤치로, 다시 AI와 스마트폰으로. 그런데 그 안에서 하는 말은 1957년 그대로였어요. ‘잠깐 쉬어가세요.’ 새로워 보이는 건 껍데기였고, 변하지 않은 건 알맹이였던 셈이죠.

그래, 다 좋은데 성과는?

여기까지는 ‘멋진 이야기’입니다. 브랜드 글은 보통 이쯤에서 끝나죠. 그런데 우리가 진짜 궁금한 건 이겁니다. 그 고집이, 실제로 어떻게 비즈니스 성과로 발현됐을까?

우선 ‘Have AI Break’ 캠페인만 볼까요? 첫 주에만 노출 900만 회, 누적으로는 35억 회를 넘겼습니다. 소셜 참여도는 18% 늘었고, 브랜드 선호도는 약 250% 올랐죠. 미디어 투자 대비 수익률(ROI)은 280%를 넘겼고요.

칸 라이언즈를 비롯한 국제 광고제에서 상도 받았습니다. 70년 된 한 문장이, 가장 새로운 기술 위에서 가장 좋은 성적표를 받아온 겁니다.

이건 키캣만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래서 ‘일관성’이라는 변수 자체를 들여다본 몇가지 통계를 덧붙입니다

1.

한 글로벌 조사(Lucidpress·Marq)에 따르면, 브랜드를 모든 접점에서 일관되게 제시하는 것만으로 매출이 10~33% 늘었습니다. 응답 기업의 68%가 일관성이 매출 성장에 직접 기여했다고 답했고요.

2.

맥킨지는 더 길게 봤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40개 브랜드는 20년간(2019년 기준) 시장지수(MSCI World) 대비 거의 두 배의 총주주수익률을 냈습니다.

3.

밀워드 브라운(현 칸타)의 분석에서는, 강한 브랜드가 약한 브랜드보다 평균 3배의 판매량과 13%의 가격 프리미엄을 누렸고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일관성은 단순한 ‘정서’나 ‘문화’에 머물지 않습니다. 완전한 ‘자산’입니다. 그리고 이 자산은 한 번 쌓이기 시작하면, 멈춰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광고처럼 끄는 순간 트래픽이 멎는 게 아니라, 시간을 등에 업고 계속 굴러가죠.

새로움이 흔해진 시대, 앞으로는?

이번 ‘Phone Break’를 만든 VML 프라하의 한 책임자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슬로건을 만들던 시절엔 사람들이 스마트폰 없이 쉬기 위해 이렇게까지 애쓰게 될 줄 몰랐을 거라고. 어쩌면 모두가 화면에 붙들려 사는 지금이야말로, 그 오래된 슬로건이 가장 절실하게 와닿는 때라고.

그리고 이 말이 핵심을 찌릅니다. 시대가 변할수록, 바꾸지 않은 메시지가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고.

지금은 누구나 콘텐츠를 무한히 찍어낼 수 있는 시대입니다. AI가 그럴싸한 카피를, 영상을, 이미지를 몇 초 만에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새로움은 더 이상 차별점이 되지 못합니다. 모두가 새롭기 때문이죠. 이 홍수 속에서 복제되지 않는 단 하나는, 한 브랜드가 오래 지켜온 태도, 그리고 그 태도의 누적입니다.

70년짜리 슬로건이 없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원리는 규모와 상관없이 똑같습니다. 매달 메시지를 갈아엎는 대신, ‘AI가 와도, 플랫폼이 바뀌어도 바꾸지 않을 한 문장’을 먼저 정하는 일. 그리고 시대가 바뀔 때마다 그 문장을 버리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꺼내 드는 일.

다시 말하지만, 일관성은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진정성의 누적입니다.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하는 게 아니라, 자기 중심을 유지한 채 변모해 가는 시대를 나답게 통과하는 과정이죠. 전문성도, 진정성도, 일관성도 모두 시간을 들여야만 쌓이는 ‘누적의 함수’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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