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선배와 수락산을 올랐습니다. 조카도 함께 왔어요. 안 본 사이 훌쩍 컸더라고요. 예전과 느낌이 달랐습니다. 대뜸 자기 MBTI를 읊더라고요. 조금 있다가 자기 퍼스널 컬러는 또 ‘가을 웜톤’이라고 말합니다. 듣자 하니 지난 여름에 유전자 검사(?) 비슷한 것도 했답니다.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아이가 안 본 사이 너무 쑥 큰 것 같다고. 어색하다고. 옆에서 듣던 조카가 제게 이렇게 말하네요.
“삼촌, 요즘은 자기를 잘 아는 게 중요하대요.
그래야 더 ‘효율적’으로 살 수 있대요.”
수락산 중턱에서 직접 찍은 사진
잘파세대의 셀프 분석, 어느 정도?
순간 많아진 생각. 직업병이 도져 집에 와 트렌드를 파기 시작합니다. 요즘 잘파세대가 실제로 얼마나 셀프 분석에 몰두하고 있을까. 실제 통계, 관련 조사들을 보니 잘파세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이 셀프 분석에 더 심취해져 있었습니다. 호기심 정도를 넘어 마치 이게 삶의 일부라도 된 듯한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셀프 분석 종류도 참 다양합니다. MBTI, 퍼스널 컬러는 기본이었습니다. 체형 분석으로 내 몸의 특징을 이해하고, 유전자 검사로 뿌리까지 들여다봅니다. 심지어 학창 시절의 생활기록부를 다시 꺼내어 성장의 흔적을 짚어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 가지 분석에 그치지 않고, 여러 분석을 조합해서 스스로는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려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런 셀프 분석이 단순한 유행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보면, 요즘 세대가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 하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한 커뮤니티 익명의 유저는 MBTI로 자신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특성을 살려 영업직에 지원했다고 합니다. 면접에서도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면접관들도 그 사실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하더군요. (결과는 글쎄요)
Ⓒgettyimagesbank
‘왜?’ 셀프 분석에 열광하는 이유
왜 이토록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분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할까요? 또 왜 심지어 적지 않은 돈까지 쓰는 걸까요? 저는 그 이유가 현대인들의 ‘불안’에서 기인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자신을 더 잘 알고 싶어 합니다. 연일 뉴스에서는 취업이 어렵고, 집값이 오르고, 미래가 더 불안해진다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그런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어도 ‘나’에 대해서는 명확히 아는 것, 그나마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을 붙잡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보와 수단이 넘쳐흐르는 ‘풍족해진 시대’의 개막도 셀프 분석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 하나면 세계 어느 곳, 그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마음 껏 배울 수 있는 최초의 세대. 또 먹거리도 다양해지고, 위생 문제도 해결됐으며, 의료 기술의 발달로 100살 이후의 인생까지 고민하는 시대에 도래했습니다.
바야흐로 기회가 도처에 차고 넘치는 시대라는 얘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지점이 우리에게 새로운 불안을 선사(?)합니다. 풍족해진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결정이 무엇일까 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것. 이때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면 아무래도 최선의 선택에 되도록 가까운 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거죠.
그리고 그들은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내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 나가는 여정, 내게 맞는 직업, 나와 잘 맞는 사람까지. 그런 의미에서 자기 분석은 이제 단순한 자기 이해의 수준을 넘어서,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중요한 도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세상 속 확실한 나를 비추는 ‘셀프 분석’ @gettyimagesbank
여기서 얻을 수 있는 ‘힌트’
1. 이런 현상을 브랜드 씬에 견주어 생각해 볼까요? 이제 브랜드는 단순히 제품을 만들고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이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여정을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치 빠른 회사들은 이미 이런 흐름을 캐치해 작고 큰 성과들을 만들어 내는 중입니다.
일부 화장품 브랜드는 자체적인 피부 분석 서비스를 통해 고객 개개인의 피부에 맞는 제품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의류 브랜드는 체형 분석과 운동 방법을 연계한 라이프 스타일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고객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했습니다.
2. 추가로 브랜드만의 내러티브를 견고히 다지는 일이 앞으로 더 중요해지겠습니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강화입니다. 브랜드 고유의 가치관과 철학, 히스토리를 전파함으로써 사람들과의 감성적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3. 또 한가지 분야에 정통성, 전문성을 보유한 브랜드로 거듭나야 합니다. 제품과 서비스, 기능 중심의 전략보다 특정한 카테고리 내에서 전문성을 강화/어필하며 해당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라는 인사이트를 제공해야 합니다. 점차 자기 취향이 확실해 지고 있는 시류 속에서 브랜드의 입지를 더 묵직하게 다져갈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전문가 포지셔닝)
4. 그 외에도 프로모션의 개인화도 심화될 겁니다. 아무나 참여하라는 식의 대중을 향한 이벤트가 아니라,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유니크한 프로모션은 이미 여러 기업들에서 시도하고 있는 전략이기도 하죠. 취향이 한 번 꽂힌 고객이라면 평생 여러분 잊지 못하고 친구처럼 지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고객이 누구인지를 세밀하게 규명하는 일이 더 중요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알고자 하는, 다시 말해 ‘셀프 분석’에 대한 열망은 결국 우리 시대의 모습이 반영된 일종의 자화상입니다.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확실한 일, 그게 바로 나를 알아가는 일인 셈이죠.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다음 시대를 주도할 잘파세대의 잠재력을 깊이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우리만의 새로운 힌트를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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